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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문화기획] 경남도내 문예지 현주소
그 많던 문예지 어디 갔을까
도내 ‘서정과 현실’ 등 반연간지 2~3개뿐…월간·격월간·계간지 전무
자본과 역량 있는 필진 부족·틀에 박힌 편집과 기획 등 원인
- 기사입력 : 2018-04-03 22:00:00
한국문학은 문예지의 역사와 그 맥을 함께한다. 근대 잡지는 문예지의 창간으로부터 시작됐고 근대문학은 문예지를 통해 활발히 세상에 작품을 내놓으며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예지는 기성작가들에게는 발표지면을, 문청들에게는 등단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또 작가와 독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문학사회에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손꼽혀 왔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달리 문예지와 출판사, 작가, 비평가의 관계가 ‘문단’, 또는 ‘사단’이라는 형태를 만들며 보수화되는 문제점이 속출했다. 게다가 지난 2015년 정부의 문예지 지원 삭감으로 ‘폐·휴간’ 사태가 잇따르면서 그 위상이 많이 추락했다. 지역 문예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오늘날 발행되는 문예지 가운데 수도권에서 발간되는 문예지가 전체의 70%를 넘어선다. 도내 상황도 여의치 않다. 현재 월간, 격월간, 계간지는 전무한 상태고, 반연간지도 두세 개에 그치고 있다. 도내 문예지 현주소와 역할, 해결 과제 등을 짚어본다.
◆국내 문예지 변천사= 문예지는 문예작품을 싣는 잡지를 일컫는다. 주로 등단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며 월간·격월간·계간·반연간의 형태로 나눌 수 있다. 문학 연구자들은 1908년에 창간된 ‘소년’을 국내 최초의 문예지로 본다. 본격적으로 문예지의 특성을 반영한 문학매체는 1924년 창간된 ‘조선문단’으로 평가받는다. 광복 이후 1948년 창간된 월간지 ‘문예’는 분단 상황에서 자유주의 문학의 기반을 닦았다. 1960년대 들어 여러 문학단체를 중심으로 기관지가 속속 등장했다. 1966년 창간된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이 대표적인데, 현실 참여와 새로운 문학담론을 창출하면서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이후 창간된 문예지 ‘문학사상’, ‘세계의 문학’, ‘문예중앙’, ‘실천문학’ 등은 새로운 문인을 발굴하며 기여했다. 그러나 1980년대 정부의 언론통폐합으로 주요 문학매체들이 폐간되면서 문예지의 활약도 주춤해졌다. 이후 1980년대 후반 언론의 자율화 정책으로 폐간됐던 문예지들이 대부분 복간했고, ‘문학동네’, ‘현대시’ 등이 창간돼 문학 교류의 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90년대 들어 문학단체의 활성화와 출판문화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문예지는 다양성과 전문성을 지니게 됐고 자연스럽게 그 수가 급증했다.
경남문학관에 전시된 문예지 창간호들.
◆경남 문예지 역사= 경남에서는 동인지, 회지 등은 종종 발행됐지만 문예지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1913년 마산문예구락부가 발행한 ‘문예구락부’ 창간호가 발간됐다. 이후 1926년 충무에서 시조 중심의 동인지 ‘참새’가 창간됐는데 4집을 끝으로 그 뒤를 잇지 못했다. 경남에서 발간된 최초의 문예잡지는 1928년 8월 진주에서 발행된 ‘신시단’이다. 1995년 발간된 ‘경남문학사’에는 이 잡지가 우리 지역에서 인쇄 배포한 최초의 문예지라고 적혀 있다. 이후 조국이 광복을 되찾으면서 도내 문인들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는데 1946년 진주시인협회를 만들어 회지 ‘등불’을 창간해 ‘영문(嶺文)’으로 개명한 뒤 1960년까지 18집을 내며 문학인구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많은 동인지가 발표되며 문학 부흥을 이끌었다. 이후 1961년 12월 31일 한국문인협회 창립 후 각지 지부들이 결성되면서 회지를 만들어 향토문학의 불씨를 되살렸다. 이후 ‘시와 생명’, ‘시와 환상’ 등의 문예지가 세상에 나왔지만 대부분이 폐간돼 명맥을 잇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김우태, 이달균 시인 등이 주축이 된 계간지 ‘시와 생명’은 참신한 소재와 의식 있는 기획력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으나 3년여 만에 발행을 멈췄다.
현재까지 발행되고 있는 문예지 ‘서정과 현실’.
◆지역 문예지의 현주소= 지역 문예지는 오래전부터 지역문학의 든든한 토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역문학사 정립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 작품의 소비와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지역사회의 상황과 긴밀하게 관련돼 정신적 구심체로서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에서 발행되는 문예지는 그 수가 많지 않다. 부산의 ‘시와 사상’, ‘신생’, 대구의 ‘시와 반시’, 경북의 ‘동리·목월’, 대전 ‘시와 정신’, ‘애지’, 강원도의 ‘시와 자연’, 충북 ‘딩하 돌아’, 광주의 ‘시와 사람’, ‘문학들’, 전북의 ‘문예연구’, 제주 ‘다층’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계간 문예지가 있지만 기관지, 동인지, 회지를 제외한 도내 문예지 가운데 계간지는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반연간지로 그 영역을 확장하더라도 ‘서정과 현실’, ‘화중련’, ‘작은문학’ 정도를 언급할 수 있다.
경남대 한정호 교수는 계간 ‘문예연구’ 2014년 봄호에서 “한국잡지협회와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되는 문학잡지는 300종가량으로 집계되는데, 이는 문예지뿐만 아니라 동인지와 기관지 등을 포함한 숫자다. 그나마도 70%가 수도권에서 발간되고 있어 지역의 문예지 상황이 더욱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사회적 여건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열악한 자본에서 문예지를 낼 수 있는 능력은 거의 없고, 빈약한 필진 또는 검증되지 않은 필진으로는 수준 높은 작품을 얻지 못하며, 구조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지역 담론을 이끌어갈 종합 문예지로서 매체 형태를 갖추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도내 문예지 부족 원인과 해결책은= 많은 문인들은 지역에서 문예지를 이끌어가기 어려운 이유로 자본 부족을 꼽는다. 수도권의 거대 출판 자본과 달리 지역 소규모 자본에서 문예지를 계속 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문예지 ‘시와 생명’ 발행에 참여했던 이달균 시인은 “당시 좋은 시도로 문단 선후배로부터 격려를 받았지만 관에 의존하지 않는 재정 구조로 한계에 부딪혔다”며 “충분하지 못한 예산이 큰 걸림돌이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필진의 한계도 원인이다. 경남의 경우 걸출한 문인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지역의 문학적 자원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을 결집시키는 힘과 문예지를 이끌어 나갈 열정과 역량을 가진 젊은 문인들의 의지가 관건이다. ‘서정과 현실’ 발행인인 이우걸 시조시인은 “매호를 발간할 때마다 좋은 필진을 꾸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며 “신작 발표 독려를 많이 하는데, 문인들의 좋은 글이 좋은 잡지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지가 있다면 지역에서도 출중한 문예지를 계속 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문예지들이 스스로 변신을 꾀하며 외면하던 독자들을 불러 모으는 사례에서 문예지 부흥의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다. 민음사는 종간된 ‘세계의 문학’의 전통을 잇고 혁신을 가한다는 기치로 새 문학잡지 ‘릿터(Littor)’를 펴내고 있다. ‘릿터’는 소설가, 시인, 평론가들이 편집위원단을 구성해 이끌어 가던 기존 문예지와 달리 편집자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드는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는데, 기존의 문학뿐 아니라 아이돌 그룹의 인터뷰부터 영화, 드라마, 만화, 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담고 있다.
소설가들이 꾸려 가는 ‘악스트’는 매호마다 1만부가 소진되고 일부는 품절돼 “중쇄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만큼 호응이 높다. 전통적인 문예지의 형태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들의 구미에 맞는 감각적인 디자인·편집에다 내용 면에서도 차별화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한 문학평론가는 지역에서 나오는 문예지들이 대동소이한 편집방식과 기획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역 문예지 기획의 반복과 재생산으로 차별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도내 문예지를 활성화하려면 지역문학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지역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는 콘텐츠를 다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 지원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정부의 오락가락 지원으로 자금난에 허덕이는 문예지들이 한때 도미노 폐간을 맞기도 했다. 지난 2015년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휴간, 폐간하는 문예지들이 늘어난 것이 단적인 예다. 이후 우수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 금액이 다시 늘어나면서 ‘폐·휴간’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언제라도 지원이 줄면 문예지를 운영하기 어려운 구조적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지자체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작가 A씨는 도내 문화예술 지원금을 관할하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 조건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올해 초 진흥원에 질의한 결과 상업성을 띤 발행물의 경우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A씨는 “똑같은 문예지로 인근 부산문화재단에 지원금을 신청했는데, 사실상 판매수익이 없기 때문에 상업 문예지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과 함께 일정 금액을 지원받게 됐다”며 진흥원의 행정편의주의를 꼬집었다.
또 다른 작가 B씨는 “메세나 운동이 문예지 지원보다 협회 위주로 흘러가고 있는 것도 문제”라면서 “기관, 협회 위주가 아닌 문예지 자체를 지원하는 시스템 도입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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