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경남시론]
작성자 경남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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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황선하 시인의 ‘현대문학’과 경남문학관- 정일근(경남대 청년아카데미 원장)
경남문학의 어제를 송두리 잃어가는 현상에 침묵해선 안돼…
- 기사입력 : 2013-12-11 11:00:00
경남 문단에서 백청 황선하 시인 (1931~2001)을 기억하는 문인들이 많다. 특히 통합 창원시의 많은 문인들에겐 유별스러울 것이다. 시인은 진해, 마산, 창원의 문학과 문단에서 언제 어디서나 어른의 자리를 어른답게 지켰던 분이었다.
황선하 시인은 생전에 <이슬처럼>(창작과 비평사, 1988)이란 시집 한 권을 내셨고, 사후에 <용지 못에서>(도서출판 경남, 2004)란 유고 시집이 나왔다. 시인은 살아서 한 권의 시집이면 족하다는 염결성으로 ‘욕심 없이/한 세상 살다가… 이슬처럼’ 떠나신 분이다. 그래서 시인은 세상 떠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잊히지 않는 것이다.
이슬 같았던 황선하 시인이었지만 생전에 욕심스럽게 애착을 가졌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당신이 박두진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한 문예지 월간 <현대문학>이었다. <현대문학>은 1955년 1월에 창간돼 현재도 발행되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종합문예지다. 시인은 <현대문학>이 창간되는 1955년에 초회 추천을 받았다.
당시 <현대문학>의 신인제도는 3회 추천제였다. 3번의 추천을 받아야 비로소 시인이란 이름표를 달 수 있던 엄격한 제도였다. 황선하 시인의 3회 추천은 1962년에 있었다. 유례없는 7년간의 긴 추천 제도를 거쳐 그는 시인이 되었다. 요즘처럼 시인이 검증 없이 쏟아지는 세태에 시인은 엄격하고 험한 길을 걸어 시인이 되었다.
당시 진해에는 H라는 서점이 있었다. 그 서점에 유일하게 <현대문학>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문예지가 들어왔다. 새 문예지가 나올 때쯤 시인이 그 서점에서 <현대문학>을 구입하는 모습을 필자는 자주 보았다.
황선하 시인은 <현대문학>을 창간호부터 오랜 병고에 시달리며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모아 소중하게 간직했다. 1980년대 진해에 있었던 시인의 집을 찾아가면 <현대문학>이 창간호부터 한 호도 빠짐없이 가지런하게 꽂혀 있었고, 시인은 그 잡지를 자랑처럼 여겼다. 그 자리에서 읽어볼 수는 있어도 훼손과 분실의 우려로 빌려주는 일은 없었다.
시인의 제자 중에 또 한 사람 <현대문학> 마니아가 있었는데, 시인의 제자였던 방창갑 시인(1939~1988)이었다. 스승을 이어 <현대문학>을 모았다. 하지만 방창갑 시인의 <현대문학>은 더러 분실로 이빨이 빠질 때가 있었다. 그러면 황선하 시인 댁에서 몇 권을 슬쩍 빼내와 자신의 서고를 채웠지만, 이내 그 사실을 안 황선하 시인은 방창갑 시인의 집으로 달려가 자신의 <현대문학>을 찾아가곤 했다.
지금도 그 두 시인을 생각하면 <현대문학>이 먼저 떠오르는데 최근 경남문인협회의 경남문학관에 행사가 있어 들렀다가, 황선하 시인이 기증한 <현대문학>이 이유가 무엇인지 창간호와 2호가 결락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보다 더 아픈 것은 시인이 애지중지하던 나머지 <현대문학>도 방치하듯 보관하다 보니 이미 너덜너덜하고 폐지 같은 책이 되어 있었다.
경상남도가 매년 경남문학관에 지원하는 많지도 않은 2500만 원을 내년도 예산에서 전액 삭감했다고 한다. 경남문학관은 비가 샌 지 오래고 수장고도 없는 오래된 옛날 동사무소 같은 살림살이다. 새 건물을 지어 추락된 ‘경남문학’의 위상을 다시 세워야 할 지경인데 쪽박을 깨는 일에, 도의 집행부를 신뢰해야 할 것인지 필자는 회의적이다. 경남문학관이 창원시에 있다는 것이 괘씸죄에 해당되었다는 말도 들린다.
아무리 전자책 시대라지만 한 시인이 1955년부터 2001년까지 40년이 넘게 모아온, 시간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 사라지고 있다. 바스라지고 있다. 무릇 문학관이란 과거를 담아 오늘에, 오늘을 담아 미래에 전하는 좋은 시스템이다. 경상남도의 문학에 대한 홀대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더 이상의 묵과도, 경남문학의 어제를 송두리 잃어가는 이 막장 같은 현상에 더 이상 침묵해서도 안 된다.
정일근 경남대 청년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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