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3월 30일자 경남신문
초정 김상옥 시인 詩碑 제막하던 날 | |||
'이 시대 마지막 선비였죠' 유족·문우·시민, 초정의 민족정신 되새겨 지난 28일 오후 2시30분 한 시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전국에서 뜨거운 문심(文心)들이 통영 남망산공원에 모였다. 초정 김상옥(艸丁 金相沃·1920~2004)의 시비 제막식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 모인 유족과 문우. 시민 300여명은 ‘봉선화’ 시비(詩碑)와 백자그림. 그리고 대표작을 새긴 돌 10여 개가 놓인 초정의 시비동산을 보며 초정과의 정(情)을 추억하고. 초정의 선비정신을 되새겼다. 김남조 시인은 “대한민국이 가장 최근에 잃은 큰 시인”이라며 그를 애도했으며. 이어령 문학평론가는 “시·서·화를 함께 한 현대에 마지막 선비의 덕목을 갖춘 마지막 선비”로 그를 회상했다. 토속적인 맛과 섬세하고 맑은 언어를 통해 민족 고유의 예술미와 전통적 서정을 노래했던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 그는 일제 강점기. 고시조가 난무하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참신한 감각을 도입해 시조의 차원을 한단계 끌어올렸으며. 가장 전통적인 것을 세련된 언어로 승화시켜 민족정체성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맥’ 동인으로 활동하다 1939년 시조 봉선화로 추천. 194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낙엽’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광복 전 반일 사상의 혐의를 받아 몇 번의 옥고생활을 겪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고향의 향토적인 정서와 문화재 등을 소재로 해 민족 고유의 예술미와 전통적 정서를 형상화한 것이 많다. 잃어가는 전통을 찾아 사물의 숨겨진 생명감을 포착. 전통률을 현대 감각으로 재구성시켜 민족혼을 일깨우는데 일조하고자 했다. 광복 후에는 시조뿐만 아니라 자유시도 많이 발표했다. 남긴 작품은 모두 600여 편. 후기로 갈수록 점차 생명의식을 포착하여 영롱하고 섬세한 언어감각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시서화뿐만 아니라 옛 자기와 서예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시집으로 ‘초적’ ‘고원의 곡’ ‘이단의 시’ ‘의상’ ‘묵을 갈다가’. 동시집으로 ‘석류꽃’ ‘꽃 속에 묻힌 집’ 등이 있다. 제1회 중앙시조대상. 제1회 노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조고운기자 lucky@k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