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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 윤동주(조선일보)
작성자 munhak
댓글 0건 조회 2,340회 작성일 200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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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음 많던 26세 청년 윤동주 ‘마지막 아리랑’은 수줍지 않았다
43년 귀국 송별회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女동급생, 그때 사연 ‘현대문학’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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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 급우들이 연 귀국 송별회를 끝내고 찍은 사진에 담긴 윤동주(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의 마지막 모습. /현대문학 제공
시인 윤동주(1917~1945)는 생애 마지막 사진을 찍은 자리에서 ‘아리랑’을 애처롭게 불렀다.

1943년 교토 도우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유학 도중 징병을 피하기 위해 귀국을 결심한 윤동주가 일본인 동급생들과 갖은 야외 송별회에서 ‘아리랑’을 불렀다는 증언이 처음으로 나왔다.

당시 교토 우지(宇治) 강변에서 열린 송별회에 참석한 동급생 중 생존해있는 두 명의 여학생 키타지마 마리코(北島萬里子)와 모리타 하루(森田)에 따르면 “강변에서 식사를 한 후 바위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급우의 부탁에 윤동주는 ‘아리랑’을 불렀다”는 것. “거절하지도, 사양하지도 않고 곧 바로 앉은 채로 불렀다. 조금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애수를 띤 조용한 목소리가 강물을 따라 흐르고, 모두들 조용히 듣고 있다가 노래가 끝나자 모두 박수를 쳤다.”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윤동주의 고향을 찾는 모임’ 회원으로 활동 중인 야나기하라 야스코(楊原泰子)씨는 생존자 증언을 종합해 ‘현대문학’ 9월호에 ‘시인 윤동주 최후의 사진’이란 글을 기고했다. “윤동주 이외에 다른 사람이 노래를 불렀다는 기억은 없다. 윤동주가 주저하지도, 사양하지도 않고 노래를 불렀던 것은 급우 전원이 자신의 송별회에 참석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윤동주 평전’을 냈던 소설가 송우혜씨도 “윤동주가 아리랑을 불렀다는 이야기는 처음 나왔다”며 “한국인이 확인하기 어려웠던 일화가 일본인의 노력에 의해 밝혀졌다”고 평가했다. 윤동주는 송별회가 끝난 뒤 동급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은 1995년 KBS와 NHK 공동 제작한 다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일본 통치하의 청춘과 죽음’을 통해 공개된 것으로 현존하는 최후의 사진이다.

그러나 윤동주가 1943년 7월14일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 한 달 전쯤 찍은 이 사진에 얽힌 뒷이야기가 생존자들을 통해 생생하게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나기하라씨는 “항상 강의실 뒷문 쪽에 앉아 수업을 듣던 수줍음 많은 윤동주였지만, 이 사진이 송별회 기념 사진이었으므로 앞으로 떠밀려 앞줄 중앙, 그것도 여학생 옆에서 사진 찍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진 속의 일본 청년들도 대부분 학도병으로 출전, 적진으로 내몰리고, 그 후의 소식을 알 길이 없다”고 한 그는 “이 한 장의 낡은 사진을 다시 한 번 바라보기 바란다. 60년이 넘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전쟁의 비참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당신에게 이야기한다”고 밝혔다.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but_blog.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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