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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경남 신춘-정희숙<어린 꽃게가>
작성자 munhak
댓글 0건 조회 3,802회 작성일 2006-01-12

본문

'2006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어린 꽃게가

          정희숙

  깊은 바다 속. 꽃게 마을 유치원입니다.
  “내일은 집에서 푹 쉬도록 해요. 함부로 나다니지 말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요즘 특히 살이 많이 차서 사람들이 눈독을 들이니까 더욱 조심을 하라는 게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산호초 마을을 지날 때였습니다. 물살이 일렁거리더니 잠수복을 입은 사람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어린 꽃게는 얼른 모래 속에 숨었습니다.
  ‘저게 뭘까? 다리가 네 개잖아. 참 이상하게 생겼네.’


  모래 틈에서 수수씨 같은 눈으로 빠끔히 내다보았습니다.
  “얘야. 정말 큰일 날 뻔했구나. 그게 바로 사람이야.”


  어린 꽃게 말을 들은 엄마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땅 위에 사는데. 바다 속에 들어와서 물고기와 우리 게들까지 마구 잡아간단다.”


  엄마 꽃게의 말에 어린 꽃게는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물 속에서도. 땅에서도 다닐 수 있는 동물은 거북이와 우리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어린 꽃게는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 땅 나라에 가서 사람들 구경을 하고 싶어요.”


  “쓸데없는 소린 하지도 마라. 아름다운 바다 속도 너무 넓어서 다 보기 어려운데. 뭣하러 땅에까지 구경을 간대니?”
  “싫어요. 사람을 꼭 한번 더 보고 싶다니까요.”
  어린 꽃게는 자꾸만 엄마를 졸랐습니다.


  “정 그렇담 다음에 엄마랑 갯벌에 있는 친척집에 가자꾸나. 그 곳에 가면 사람들 구경을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너무 어려서 안 돼.”
  어린 꽃게는 땅 나라 구경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어서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엄마가 주는 먹이도 골고루 먹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돌이 오빠야 놀자”
  옆집 게돌이 오빠랑 미역 마을에 가서 숨바꼭질을 합니다. 미역은 매끄러운 몸매로 살랑살랑 춤을 추며 같이 놀아줍니다. 파란 미역 사이로 요리조리 숨어 다니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유치원에도 다니고 숨바꼭질도 하며 지내는 사이 몇 달이 흘렀습니다. 어린 꽃게는 그 동안 많이 자랐습니다. 딱딱한 껍질로 된 옷을 갈아입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얘야. 잠깐 나갔다 올 테니 집 잘 보고 있어. 밖에 나가지 말고…. 또 엉뚱한 짓 하면 안 돼.”
  엄마꽃게가 어린 꽃게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세요.”
  그 말에 엄마꽃게는 마음놓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러나 혼자 있자니 심심해진 어린 꽃게는 금세 호기심이 일어났습니다.


  “물고기들은 물속에서만 다닐 수가 있는데. 우리 꽃게는 땅에서도 걸어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언젠가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맞아. 땅 나라에 사람들 구경을 가는 거야. 엄마한테 말하면 또 더 기다리라고 하실 게 뻔해’
  어린 꽃게는 살그머니 옆집 게돌이에게 갔습니다.


  “오빠. 우리 사람들 구경갈래?”
  어린 꽃게의 말에 게돌이는 덜컹 겁이 났습니다.


  “순아 너 또 그 얘기구나. 엄마가 꼼짝 말고 집에 있으랬는 걸.”
  “치이. 오빠는 겁쟁이야. 오빠 바보!”


  게돌이는 예쁜 게순이한테 겁쟁이라는 말을 듣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지고 말았습니다.
  “그래 좋아. 그런데 사람을 만나면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돼.”


  “걱정 없어. 가까이 오면 이 집게발로 꼭 물어버리면 되잖아.”
  게순이는 튼튼하고 잘 생긴 집게발을 자랑스럽게 내밀어 보였습니다.


  우선 갯벌까지 가 볼 참이었습니다. 커다란 두 발로 헤엄을 치다가. 여덟 개의 작은 발로 걷기도 했습니다.
  한참만에 갯벌에 닿았습니다.


  갯벌에는 많은 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작은 구멍을 파놓고 그 속을 들락거립니다. 썰물이 되어 갯벌이 드러나면 먹이를 잡아먹다가. 물이 밀려오면 후다닥 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후후. 모두 겁쟁이들뿐이잖아.”
  게순이가 참 안됐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온통 넓은 갯벌뿐입니다.
  “순아. 안되겠어. 우리 다음에 또 오자.”


  날이 어두워지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또 다시 헤엄도 치고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그러나 집은 아직 멀리 있습니다.


  갑자기 수많은 꽃게들이 우루루 몰려오는 게 보였습니다. 게순이의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오빠! 저기 무슨 일이 생겼나봐. 우리 한 번 가보자.”


  “안 돼! 순아! 오늘은 너무 늦었어. 빨리 집에 가자.”
  “치이. 오빠 겁쟁이! 이렇게 꽃게들이 많이 모인 건 처음 보는 걸.”


  게순이는 어느새 꽃게들 틈새로 헤엄쳐갔습니다.
  많은 꽃게들이 점점 가까이 모여들었습니다.


  “아주머니. 무슨 일이 생겼어요?”
  옆에 있는 아주머니 꽃게한테 물어보았습니다.


  “글쎄 큰일났구나. 아무래도 우리가 그물에 걸린 것 같애.”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살려주세요!”
  모두들 비명을 지르고 난리였습니다. 이리 저리 부딪히다가 서로의 몸이 포개졌습니다.


  ‘하느님? 용왕님? 아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꽃게를 만든 분은 참으로 훌륭해.’
  게순이는 튼튼하고 딱딱한 껍질이 있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껍질만 아니었다면 이리저리 부딪힐 때마다 얼마나 아플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몸이 자라서 껍질을 갈아입을 때마다 얼마나 귀찮았는지 모릅니다. 등딱지의 뒤끝과 다리 뒷부분의 이음새가 터질 때마다 정말 아팠습니다.
  다른 꽃게들 속에 파묻힌 게순이는 밖으로 나오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지쳐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시끌벅적한 소리에 놀라서 눈을 떴습니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습니다. 은가루처럼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부셨습니다.


  게순이는 온몸에 톱밥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게순이는 톱밥을 헤집고 작은 눈을 깜빡이며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세상에! 여기가 바로 땅인가 봐.’


  왔다 갔다 하는 저들이 사람인가 봅니다.
  ‘햐! 사람들 좀 봐. 되게 웃기네. 모두가 옆으로 걸어가고 있잖아.’


  게순이는 사람들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옆에는 고등어 갈치 소라 등 바다 속 친구들이 상자 가득 담겨 있습니다.


  ‘저런. 모두들 구경은 않고 잠만 자다니…. 역시 우리 꽃게가 최고야.’
  그때였습니다.
  “아줌마. 저 꽃게 두 상자만 주세요.”


  어떤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게순이가 든 상자를 번쩍 들어올려 차에다 싣고 어디론가 떠납니다. 빵빵 소리를 내며 급히 달려갑니다. 가만히 있는데도 높다란 건물들이 씽씽 지나갔습니다.


  “우와. 되게 재미있다.”
  땅 나라가 이렇게 신나는 곳이라니! 게순이는 구경을 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조용한 마을에 닿았습니다. 자동차들이 달리면서 쏟아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뜸해졌습니다.
  “싱싱한 고등어 사세요!. 고등어. 눈이 말똥말똥한 고등어 사세요! 고등어.”


  차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아저씨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싱싱한 갈치 사세요! 갈치. 눈을 떴다가 감았다가 하는 갈치 사세요! 갈치.”


  아무리 보아도 고등어와 갈치 눈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어머! 이 아저씨 거짓말쟁이잖아. 정말 나쁜 사람이네.’


  게순이는 아저씨를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꽃게 매운탕을 해야겠어요. 아저씨. 꽃게는 얼마예요?”


  “예. 오늘 새벽에 갓 잡은 거라서 정말 싱싱해요. 네 마리 만원만 주세요”
  아저씨가 커다란 꽃게 네 마리를 봉투에 담았습니다.


  ‘어? 이상해. 나는 어제 저녁에 잡혔는데….’
  게순이는 갈수록 아저씨가 얄미웠습니다.


  “옜소. 덤이요!”
  그 때 아저씨가 게순이를 덥석 집었습니다.


  ‘바로 이때야. 거짓말쟁이 아저씨는 내가 혼내 줘야 해.’
  게순이는 재빨리 집게 발가락으로 아저씨 손을 꼭 깨물었습니다.


  “아이고 아야! 요 녀석. 쬐끄만 게….”
  아저씨가 게순이를 내동댕이쳤습니다.


  “에고. 아저씨. 고렇게 작은 걸 어떻게 먹으라구요. 그러니까 꽃게가 물지요. 호호호.”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실랑이 끝에 다른 꽃게가 덤으로 딸려갔습니다.


  “아줌마. 우리가 팔려 가면 어떻게 돼요? 그리고 매운탕이 뭐예요?”
  게순이가 옆에 있던 아주머니 꽃게한테 물었습니다.


  “쯧쯧! 이 어린 것이 어쩌다가 벌써 잡혀왔을꼬. 불쌍한 것 같으니라고.”
  아주머니 꽃게가 안됐다는 듯이 혀를 껄껄 찼습니다.


  “사람 구경도 실컷 하고 얼마나 재미있었다구요. 그런데 왜 불쌍하다고 그러세요?”
  “이것아. 이제 팔려 가면 곧바로 죽을 거니까 그렇지.”


  “죽으면 어떻게 돼요?”
  “어떻게 되긴 그냥 끝장이지. 끝장. 엄마도 못 보고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엄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엄마가 몹시 보고 싶었습니다. 바다 속 아름다운 꽃게 마을도 생각났습니다. 게돌이 오빠랑 미역마을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유치원 친구들도 보고 싶습니다.


  “엄마-.”
  게순이는 여러 개의 발을 동당거리며 앙앙 울었습니다.


  “쯧쯧. 그러게 누가 함부로 쏘다니랬니?”
  아주머니 꽃게가 나무랐습니다.


  아저씨가 싣고 온 생선은 금방 팔렸습니다. 게순이랑 다른 꽃게 몇 마리만 남았습니다.
  “자. 오늘 새벽에 잡은 싱싱한 꽃게. 떠리미요. 떠리미.”


  아저씨가 방송을 해도 아무도 꽃게를 사러 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 너희들은 우리동네 소녀가장 보름이네 몫이다.”


  아저씨는 할 수 없다는 듯 시동을 걸고 달리더니. 어느 나지막한 집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오늘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꽃게를 가져왔다. 꽃게 된장찌개를 해 먹으렴.”


  남은 꽃게를 봉지에 싸서 보름이에게 주고는 붕 사라졌습니다.
  “어! 누나. 아기 꽃게도 있네?”


  “어디 보자. … 정말이네. 불쌍하다 그치?”
  “누나. 내가 살려주고 올게.”


  어린 아이가 게순이의 집게발을 잡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게순이는 아이의 손가락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가만히 있어봐. 내가 살려 줄게.”
  아이는 쌕쌕거리며 자꾸 달렸습니다.


  한참 만에 도착한 곳은 바닷가였습니다.
  “엄마 말 잘 들어. 우리 엄마는 내가….”


  아이가 게순이의 작은 눈을 들여다보며 속삭이더니. 바다로 휙 던져주었습니다.
  “아기 꽃게야. 잘 가!”


  게순이는 집으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했습니다.
  ‘엄마 말 안 듣고 집 나온 걸 어떻게 알았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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