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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문단·문인 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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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에 도움......좋겠습니다-4(후반부)
작성자 곽병희
댓글 0건 조회 2,951회 작성일 2005-02-03

본문

있고, 그 다음 <전의식(前意識)>·<의식(意識)>·<가면(persona)>으로 둘러싸여 있다면 그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무의식을 표출시켜 구어(口語)도 아닌 문자로 기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브르똥(A. Breton)이 ´한 사내가 창문에 의하여 두 쪽으로 나뉘었다´는 고백에서 출발한 초현실주의 이론은, 일상에서 언뜻언뜻 떠오르는 무의식적 심상들을 몽타쥬한 것이거나, 세속적 논리와 가치를 배제하고 자유 연상(自由聯想)한 결과로 작품화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후반기(後半期) 동인> 중 한 사람인 조향(趙鄕)의 작품입니다.

열 오른 눈초리, 한잔한 입 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뿐히 앉는다.
이윽고 총 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물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다보았다.

---아이! 어쩜 바다가 이처럼 똥그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 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처박곤 하이얗게 화석(化石)이 되어 갔다.
- 조향, [EPISODE] 전문

이 작품은 일상적인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3개의 에피소드로 짜여져 있습니다. 첫째로는 소녀가 손으로 총구를 가렸는데도 그냥 쏘았다는 점입니다. 둘째로는 소녀가 뚫린 손바닥 구멍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 어쩜 바다가 이처럼 똥그랗니?´라고 묻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놀란 갈매기들이 산비탈 황토바기에 머리를 처박으며 ´하이얀 화석´이 되어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일들은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좀처럼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총구멍을 손으로 가려도 쏠 수는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고, 손에 구멍이 났는데도 한가롭게 그 구멍으로 바다를 내다보며 똥그랗다고 말할 리 없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시인의 무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심리적 풍경을 몽타쥬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작품을 해석할 때는 프로이트(S. Freud)나 융(C. G. Jung)의 무의식의 이론을 빌어 해석합니다. 이 작품을 그런 이론에 해석할 경우 ´총´은 남성 성기, ´구멍´은 여성 성기, ´바다´는 ´모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녀가 손바닥으로 소년의 성기를 가렸는데도 그대로 사정(射精)을 하고, 정사(情事)가 끝났을 때 바다의 갈매기들은 황토바기 쪽으로 날아올랐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초점을 택할 경우, 사람마다 무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풍경이 달라 다른 시인들과 변별성을 확보하기에 용이하다는 게 장점입니다. 반면에 무의식의 이론을 빌리지 않으면 해석하기 어렵고, 무의식 속에 내포되어 있는 본능과 욕망에 초점을 맞추어 인류가 가꾸어온 도덕적 가치관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훼손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도덕성을 중시하는 영미 신비평(New-critics) 그룹이 자기들과 같은 시대에 전개된 초현실주의 운동을 외면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4)기호적 상징형

전통적인 시학에서는 기호적 상징(signal symbol)을 문학 작품에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해 왔습니다. 작품 속에 쓰인 상징체계를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단순한 암호로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예술들은 전통적인 매재(material)에서 자주 벗어나고 있습니다. 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어 대신 기호와 도형을 사용하고, 무의미한 철자(綴字)들을 나열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입체주의(Cubism)·미래주의(Futurism)·다다이즘(Dadaism)들의 ´구체시(concrete poem)´, ´음향시(poem sonora)´, ´꼴라주(collage)와 몽타쥬(montage)의 시´, ´추상시(abstract poem)´, ´침묵시(dumb poem)´ 등이 그런 예에 속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호적 상징형은 현대의 실험적인 작품들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르테가(Y. G. Ortega)가 말했듯이 시의 기본 어법에 해당하는 은유화 역시 기호화의 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 애인을 ´꽃´으로, 시련을 ´바람´으로, 못살게 구는 사람들을 ´진딧물´로 설정하고, ´가녀린 꽃에 세 번 바람이 불어왔다/진딧물이 꽃잎을 뒤덮기 시작했다´라고 썼을 경우, 쓴 사람은 그걸 은유화라고 생각하지만 추론의 고리를 모르는 독자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어 기호로 받아들입니다.
다음 이상(李箱) 작품도 그런 예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이 작품을 무의식의 반영으로 보고, 나열된 숫자는 개성을 상실한 현대인, 그런 숫자들을 뒤집어 쓴 것은 가치관의 전도(顚倒), 진단 결과를 나타내는 ´0 : 1´은 여성 상징(0)과 남성 상징(1)이라고 설명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현대인들은 모두 개성을 상실하고 가치관이 전도된 상태에서 오직 성적(性)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종래 해석입니다.

환자의 용태에 관한 문제


진단 0:1
26.10.1931
이상 책임 의사(責任醫師) 이 상(李箱)
- 이상, [오감도 시 제4호] 전문


그러나 이 작품이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들끓는 가마솥´ 같은 리비도(libido)가 지배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이처럼 규칙성을 띨 리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숫자들은 이성의 힘을 빌어 대상의 의미나 외관을 제거하고 기호화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호적 상징을 구사하면 전통적인 시에서 얻을 수 없었던 새로움과 시적 긴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논리적 전환 과정이 생략되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시가 됩니다. 전통 시학에서 이 초점을 기피해 온 것도 이런 전달의 차단 때문입니다. 하지만, 군데군데 삽입할 경우 한결 다양한 의미를 함축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적 감각이 돋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4.복합 초점(complexed focus)의 화제가 좋은 화제입니다

인간의 인식은 단일한 감각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생각하면서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 가장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인적(全人的) 인식을 표현한 작품만이 가장 확실하게 전달됩니다. 영미 신비평가들이 관념시나 즉물시보다 이들의 특성을 모두 포괄한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 또는 포괄의 시(inclusion poetry)를 바람직한 것으로 꼽아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복합 초점을 지닌 작품들이 훨씬 입체적인 인식을 가능하도록 만든다는 것은 다음 작품들을 살펴보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 김현승(金顯承), [눈물]에서

ⓑ북망(北邙)이래도 금잔디 기름진 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觸 )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죽음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만 그리우리.
- 박두진(朴斗鎭), [묘지송(墓地頌)]에서

ⓒ새벽 세시 반
몰래 샤갈의 방문을 연다
그때
벽에 걸린 램프를 잡는
바람의 흰 손이
반쯤 내 눈을 가리고
반쯤 내 눈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고양이의
한쪽 눈 속에 기울어지는 수평선
일렁이는 등대의 불빛
기울어지는 술병 속에
떨어져 내리는 암보라의 꽃잎
- 김여정(金汝貞), [레몬.1]에서


관념형(conceptional pattern)을 C, 즉물형(conceptional pattern)을 P, 무의식형(unconscious pattern)을 U, 기호적 상징형(signal symbolic pattern)을 S로 표시하고, 주된 것을 대문자로, 부차적인 것은 소문자로 등급을 표시할 경우 앞의 작품들은 각각 C, Cp, cPu로 분류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는 시인의 말을 빌리면 어린 아들을 잃은 슬픔을 기독교적 신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신´으로 표상 되는 신이 요구하면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깨끗한 눈물을 드리겠다는 시인의 말 이외는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짐작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화자의 내면에 넘쳐흐르는 관념과 정서에만 초점을 맞추고, 여타 요소들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도 죽음에 대한 정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물질적 외관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작품 속의 사물들은 관념의 껍질을 벗고 좀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금잔디 기름진 데 동그만 무덤들´이라던가, ´어둠 속 무덤에 하이얀 촉루´가 그런 구절입니다. 하지만 엘리어트가 말하는 형이상시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관념과 물질적 감각이 ´통합(fusion)´된 상태가 아니라 관념을 보조하는 차원(Cp)에 머물고, ´기상(conceit)´과 ´절연(depaysement)´의 이질적 결합이 아니라 유사성에 의한 동질적 결합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앞의 작품보다는 잘 전달되면서도 새로운 맛이 없습니다.

ⓒ는 아주 다릅니다. 시인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아주 환상적이고 새로운 풍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작품이 물질적 감각(P)을 강화하고, 고르게 초점화한 것은 아니지만 관념적 요소(c)와 무의식적 요소(u)를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초점의 유형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들을 결합시키면 아래와 같이 15개의 복합 초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① 기 본 형 : C P U S (4)
② 1차 결합형 : CP CS CU PS PU SU (6)
③ 2차 결합형 : CPS CPU CSU PSU (4)
④ 3차 결합형 : CPSU (1)

그리고 각 유형은 고립된 게 아니라 양(量)과 위치(位置)와 빈도의 차이만을 지닌 다는 점을 인정하면 CPUS도 Cpus, CPus, CPUs, CpUs, CpuS, cPus, cPUs, cPUS, cpUs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구(球)를 이루게 됩니다. 시인마다 같은 제제를 택해도 각기 다른 작품이 되고, 같은 시인이 같은 주제를 택해도 또 다른 작품이 되는 것은 어떤 초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에서 이 네 가지 초점을 취하는 작품들은 거의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서정주(徐廷柱)의 초기시가 가장 많은 초점을 포괄하고 습니다. 그 스스로 자신을 ´생명파(生命派)´라고 일컬었듯, 생명 의식을 존중했기 때문인지, 비인간적인 S가 빠지고 CPU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실험적인 작품을 써봤습니다.

신문(新聞)을 집어들었다. 조르주 무스타키가 카운터 뒤편 흔들이 문을 밀고 들어선다. 지워버리고 싶어라, 지워버리고 싶어라. 고향도 추억도 지워버리고 싶어라. 뭐 드시겠어요? 어두운 강물 저 편에서 슬그머니 빠져 나온 마녀같이 클로즈업된 레지의 얼굴. 광고(廣告) 속의 나타샤 킨스키는 입술을 반쯤 벌린 채 웃고. 이제쯤 그녀는 샤워를 끝내고 콤팩트를 꺼내들 꺼야. 지워버리고 싶어라, 지워버리고 싶어라. 사랑도 추억도 지워버리고 싶어라. 두 뺨을 두들기는 은어같이 하이얀 손. 자주 한눈을 파는 목관악기(木管樂器) 주자(奏者)는 반음(半音)씩 이탈하고. 지워버리고 싶어라, 지워버리고 싶어라. 사랑도 미움도 지워버리고 싶어라. 팽창하는 거시기와 유방(乳房). 인간에겐 정말 사랑이란 게 존재하는 걸까? 지금쯤 장마가 끝난 고향집 뒷산 굴참나무 숲은 수묵빛으로 한결 투명해졌을 꺼야. 증시(證市)는 연일 폭락(暴落). 치안 부재(治安不在), 어제도 어린 여고생이 부모 앞에서 집단 폭행 당해. 暴行? 暴行? 暴行! 점점 커지는 신문지의 활자. 지워버리고 싶어라, 지워버리고 싶어라. 고향도 추억도 지워버리고 싶어라. 그녀는 지금쯤 골목길을 빠져 나와 버스를 기다리겠지. 바람이 불 때마다 간당간당 뒤집히는 포프라 이파리, 우두둑 우두둑 떨어지는 햇살 소리에 놀라 양산을 비껴 들고 바라보는 하늘. 앞 자리 스타킹을 내리는 킨스키를 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무스타키. 무스타키? 킨스키? 스키? 키스? ´Kiss´의 ´K´음은 킬리만자로의 눈처럼 날카롭고도 불같은 욕망을,´S´는 입술 스치는 소리이거나 그 다음에 밀려오는 허망을 돋보이게 만드는 음상징(音象徵)? 그렇다면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빠는 것도 키스가 아닐까? 키스? 스키? 눈부신 입술의 활강(滑降). 허공 가득 날리는 눈가루. 키스하고 싶어라, 키스하고 싶어라. 사랑도 추억도 고향집 산그늘처럼 비워두고 키스하고 싶어라. 어머, 오래 기다리셨어요? 음? 음. 인생은 기다리며 사는 것. 사랑을 기다리고, 죽음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싶어라, 기다리고 싶어라. 고향집 산그늘처럼 기다리고 싶어라.
- 필자, [그녀를 기다리며 : 사랑찾기·5] 전문

화자는 무스타키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다방에서 신문을 뒤적거리며 연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레지 얼굴에서 마녀의 얼굴을 떠올리는가 하면, 신문 광고에 등장하는 여배우가 전축 가락 속의 가수와 만나 수작을 거는 환상에 빠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서로 비슷하다는 걸 생각하다가 <무스타키→킨스키→스키→키스>로 넘어가는 언어 유희(pun)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시각적 청각적 인식(P)과, 그에 대한 주관적인 의미부여(C), 정서 고조로 인하여 발생하는 무의식적 환상(U), 구체적 사실을 무시하고 작위적으로 추론하는 기호적 상징(S)이 뒤섞인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초점이 바뀜에 따라 화자도 넷으로 분리되어 각기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화자는 다방 안의 풍경을 살피면서 연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따라서 일상적이면서 이성적인 화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화자는 무더운 여름날 연인을 기다리는 일을 번거롭다고 생각하면서 모두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일상적이되, 감성적인 화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세 번째 화자는 레지의 얼굴을 마녀의 얼굴로 바꿔 보는가 하면, 음악 속의 무스타키가 신문 광고 속의 킨스키와 만나 수작을 거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문 기사의 성폭행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목욕하는 연인의 나신(裸身)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일상적이며, 성적 욕망에 사로잡힌 무의식적인 화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화자는 ´무스타키´와 ´킨스키´의 이름에서 ´키스´라는 단어를 연상하고,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K´음을 ´킬리만자로의 눈´같이 날카롭고도 불같은 욕망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S´음은 입술 스치는 소리거나 키스 다음에 밀려오는 허망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음상징이라고 해석하고, 키스는 두 입술이 미끄러지는 ´활강´이며, 활강이 스키 용어라는 점을 착안하여 허공 가득 눈가루가 날리는 풍경을 추론해 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적이고 작위적인 화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이론적으로 말했나요? 하지만 시적 충동(poetic impulse) 속에는 아주 이질적이고도 상반된 생각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걸 작품으로 쓰면 아주 단순해지고 맙니다. 그것은 언어의 기호성(記號性)과 순차성(順次性) 때문에도 원인이 있지만, 시작(詩作) 과정에서 초점을 단순화시킨 데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생생한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알아둬야 할 이론이기에 소개했으니, 작품을 쓸 때에는 그 화제가 얼마나 다양한 초점을 갖추고 있는가 살펴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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