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시집<나는, 웃는다>-경남도민일보
작성자 mun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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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두번째 시집 <나는, 웃는다> | ||||||||||||||||||||||||
더욱 성숙해진 차가운 이성과 언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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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민 기자 lcm@dominilbo.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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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드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듯한데, 그의 시선에 걸려드는 사물(사람)들은 낱낱이 해부되고 만다. 이는 그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리적 해부라면 잔인함도, 끔찍함도 끼어들 여지가 없을텐데, 그의 ‘해부’는 섬뜩하다. 그리고 때로는 잔인하다. 이를 두고 “나날이 추문을 더해가는 헛헛한 현대성을 조문하는 울음(평론가 최현식)”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웃는다’라는 의미를 음미하기란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니다. 즐겁고 기뻐서 웃는 일은 만무할테고, 슬퍼서 웃는다고 단정짓기엔 너무 밋밋하고, ‘운다’의 반어적 표현이랄 수도 없고, ‘나는’ 뒤에 쉼표가 왜 찍혔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시인은 사물을 해부하고 자신을 해부한 연후에 ‘나는, 웃는다’라는 ‘수술결과서’를 내보이고 있다. 유홍준의 시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가족서사다. <상가에 모인 구두들>에서 아버지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세계의 폭력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어머니상이 섬뜩하게 전면화 되었다면, <나는, 웃는다>에서는 이 주제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좀더 넓고 깊게 탐색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인은 “낡은 런닝구 입고 마루끝에 앉아” 아교를 녹여 “개다리 소반을 붙이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깜쪽같이 자신의 과오를 수습하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라고 자문한다. 그런 아버지는 ‘아교도 교주’로 명명된다. 그런데 시인은 어느새 “아버지를 만나 나도 이제 (아교도로) 개종을 하고 싶다”고 한다. “정확히 무언지도 모를 나의 무언가를 감쪽같이 붙이고(‘아교’ 중)” 싶기 때문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아버지와의 화해는 단순한 봉합이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니게 되는 솔직한 삶의 자세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복합성과 아이러니까지 담아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많은 ‘흉터’가 있다. “숟가락으로 파먹다 만 뒤통수(‘나는, 웃는다’ 중)”에 “빨간 소독약 묻힌 솜뭉캇가 박혀 있는가 하면, “쪼아 먹힌 눈”과 “파먹힌 얼굴”들도 있다. 그러다가 “누가 이 흉터끼리 뽀뽀를 시키는 거야”라며 “배를 잡고 웃기”까지 한다. 흉터에 대한 잔혹한 묘사와 “흉터끼리의 뽀뽀”를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좌절된 세계’와 만나는 눈물겨운 과정이다. “한 인간을 잠그고 있는 흉터(‘그의 흉터’ 중)”는 “만능열쇠”로도 열수 없다. “흉터는 바깥에 열쇠구멍이 없기” 때문이며, “흉터 속에 그가 열쇠를 움켜쥐고 들어가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렇게 흉터와 뽀뽀하며 흉터를 직시하며, 웃고 있다. ‘흉터’가 좌절과 고통의 직접적인 은유라 할지라도 시인은 쉽사리 ‘흉터’를 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억지로 화해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별볼일 없는 추레한 현실’과 맞대면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시인의 힘이다. 시집을 덮으며 보게 되는 ‘시인의 말’은 ‘나는, 웃는다’라는 제목처럼, 중첩된 의미들로 가득 차 있다. “오동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아이 하나가 다가온다.//동그랗게 말아쥔 아이의 손아귀에서//매미 울음소리가 들린다.//얘야, 그손//풀어//매미 놓아주어라.//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평생 우는 손으로 살아야 한단다.” 유홍준 시인은 1962년 산청에서 태어났으며, 진주에서 살고 있다. 117쪽. 6000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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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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