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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문화 신춘-최명란<내 친구 야간 대리운전자>
작성자 munhak
댓글 0건 조회 3,750회 작성일 2006-01-12

본문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내 친구 야간 대리운전사

최 명 란



늦은 밤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가 손님 전화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꼭 솟대에 앉은 새 같다

날아가고 싶은데 날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며 서성대다가 휴대폰이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재빨리 사라진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또 언제 날아와 앉았는지 솟대 위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그의 날개는 많이 꺾여 있다

솟대의 긴 장대를 꽉 움켜쥐고 있던 두 다리도 이미 힘을 잃었다

새벽 3시에 손님을 데려다주고 택시비가 아까워 하염없이 걷다 보면 영동대교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참은 적도 있다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은 정육점 앞을 지나다가 마치 자기가

붉은 형광등 불빛에 알몸이 드러난 고깃덩어리 같았다고

새벽거리를 헤매며 쓰레기봉투를 찢는 밤고양이 같았다고

남의 운전대를 잡고 물 위를 달리는 소금쟁이 같았다고 길게 연기를 내뿜는다

아니야, 넌 우리 마을에 있던 솟대의 새야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솟대 끝에 앉은 우리 마을의 나무새는 언제나 노을이 지면

마을을 한 바퀴 휘돌고 장대 끝에 앉아 물소리를 내고 바람소리를 내었다

친구여, 이제는 한강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물오리의 길을

물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물새의 길을 함께 가자

깊은 밤

대리운전을 부탁하는 휴대폰이 급하게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사라지는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

오늘밤에도 서울의 솟대 끝에 앉아 붉은 달을 바라본다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에 매달려 달빛은 반짝인다

하단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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