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일보 문화면의 전면을 차지하고 앉은 ‘경남의 문화인맥 -문학’기사를 읽는 동안 내게 떠올랐던 말들은 ‘황당함’, ‘기막힘’, ‘어이없음’ 같은 말들이다. 도대체 이런 얼토당토않은 기사가 그것도 기획기사라니 차마 믿기지도 않는다.
‘도내 문학계보 대강도’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사진들까지 넣어 기사의 상단을 차지하고 앉은 그림은 말 그대로 가관이다. 정진업 시인과 김수돈 시인이 카프문학인이었다는 것은 논할 가치도 없이 명백히 잘못된 사실이거니와, 그 아래 계보를 잇는다고 실어놓은 사진 속의 문인들 얼굴 앞에서 나의 황당함은 극에 이른다. 김상옥, 김춘수, 유치환 시인이 이은상의 맥을 잇고 있다니 이는 또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기사의 왼쪽에는 ‘지역문학 흐름도’라는 또 다른 도표를 만들어 놓았다. 마산·창원지역과 진주지역의 문학적 흐름에 대한 기자의 관점을 시대별로 막연히 구분해놓은 듯한데, 객관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마산창원지역과 진주 외 다른 경남지역의 문학 양상이 제외된 일도 그렇거니와 ‘1940~50년대’라고 시대를 한꺼번에 뭉뚱그릴 수 있는 용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가. 이런 기사를 기획하며 기자가 한국문학사를 한번이라도 읽어보았다면 소위 ‘암흑기’라 불리는 1940년대 초반과 1945년 이후의 해방공간과 1950년 한국전쟁 뒤의 문학 환경이 같지 않음을 모를 까닭이 없다.
“창작 세계 열중… 후진 양성 소홀한 편”이라고 크게 써놓은 기사의 머리말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학하는 사람들은 후진을 양성하는 사람들인가. 후진을 양성해야 하는 데도 후진 양성에 소홀했으니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본문에 이르기를 권환 시인이나 정진업 시인의 문학이 ‘후진으로 꼽을 만한 제자가 없어 맥이 끊겼다’니 기자가 생각하는 문학적 인맥이란 어떤 도제적 관계를 말하는 것인지 내 상식으로서는 그 접근법을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경남의 문화인맥’이라는 기획 제목과는 너무도 다르게, 논리에도, 객관적 사실에도 맞지 않게 들쭉날쭉 문단사를 늘어놓고 있는 기사의 내용은 또 오죽 제멋 대론가.
‘시조시인 이은상에서 출발하는 지역의 현대시조’라 쓰고 이어 ‘김상옥’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이때 기자가 말하는 지역이란 마산만을 말하는 것인가. 당시에 시조문학이 더 활발했던 곳은 마산이 아니라 초정 김상옥의 고향인 통영이었다.
1926년 한국 근대문학사상 최초의 시조동인지인 ‘참새’가 나온 곳도 통영이다. 늘샘 탁상수를 비롯, 황산 고두동 같은 통영 지역 시조시인들의 문학적 가치를 단칼에 재단하고 노산만을 앞세우고 있으니 그 근거는 무엇인가.
또 기사에는 ‘마산의 여류 지하련이 단편 <결렬>로 <문장>지의 추천을 받았다’고 써놓았는데 ‘여류 지하련’이라는 말도 우습거니와 작품 제목은 <결렬>이 아니라 <결별>이다. 더하여 기자가 진주지역의 두 가지 큰 문학적 흐름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는 동인지 <군상>은 당시 진주지역 고교생들이 펴낸 시동인지인데, 삼천포에 있던 박재삼 시인이 2집부터 시조를 발표하며 참여하고 있다 해서 진주의 문학을 대표할 두 가지 큰 흐름 중의 하나로 내세워질 만큼의 자리에는 있지 않았다.
기사에는 또 동인지 <군상>의 창간연도도 1950년이라 했는데, 1951년의 잘못이다. 처음부터 문학인들의 영향관계를 밝혀 볼 노릇이었으면, 차라리 박재삼 시인이 영향을 받았다고 밝혀놓은 대로, 중학교시절 스승이었던 김상옥 시인과의 영향관계를 따져볼 일이다.
또 기사에는 진주에서 1947년 시협이 주체가 되어 영남문학회를 결성하고, <영남문학>을 발간했다 쓰고, 다시 영문으로 제호를 바꿨다고 했는데, <영남문학>의 출발은 1947년이 아니라 1946년 진주시인협회에서 발간한 <등불>에서부터 비롯된다. 또한 <등불>이 제호를 바꾸고 제 5집인 <영남문학>을 발간하는 것은 1948년 6월의 일이다.
기사에는 또 아동문학가인 이원수 선생을 일러 김수돈의 활동 시기에 돋보였다고 했는데 선생의 본격적인 문학 활동 시기를 좀 늦추어 잡더라도 김수돈 시인의 등단시점 보다 10여년이나 더 앞선다.
또 기사는 1970년대의 문학적 흐름을 살피면서 느닷없이 창원에서 발행되는 <포에지 창원>과 마산에서 발행되는 <계간 작은 문학>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 문예지의 발간은 아직 채 10년도 되지 않은 최근의 일이다.
또 기사는 1980년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문인으로 홍진기, 이상옥, 김언희를 들고 있는데, 김언희 시인과 이상옥 시인은 1989년에 문단에 데뷔한 시인들이다. 1980년대 한국 문학의 큰 흐름인 민중문학의 전개가 경남지역에서도 활발했을 터인데 언급조차 없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성윤석과 결혼한 김애영은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분에 당선돼 등단했다’는 엉뚱한 기사에 오면, 기자의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 이전에 동화로 등단하고 소설가로 활동하는 김애영의 이름 앞에, 시인인 ‘성윤석과 결혼한’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이는 것은 기자가 생각하는 대로 문학 판에 미치는 인맥의 힘을 보여주고자 하는 까닭인가?
문학하는 사람들의 교류가 서로의 문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나,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 지으며 접근하는 것은 기자의 문학에 대한 무지이거나 무지로 말미암은 억지일 뿐이다. 굳이 이런 기사를 써볼 계획이라면 문학에 관한 책도 좀 읽고, 지역문학의 연구자들에게도 좀 물어보라.
그런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사실관계도 명확하지 않고, 객관적 논리도 없고, 그저 단순하고 편협한 자기의 생각을 들내고 싶거든, 구독자를 졸인 양 우롱하지 말고 블로그를 만들어 써라. 그저 대충 주워들은 얘기로 써놓은 엉터리 기획기사에 ‘설령 문화인맥 기사에 이름이 거론되지 않거나 업적이 소극적으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독자들이 이해’하라니 오래오래 비감할 따름이다.
/송창우(경남대 강사·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