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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삼국시대의 사화(史話) 중에서 ‘도미 이야기’처럼 부부 사이의 애틋한 정과 신의를 담은 이야기도 드물 것이다. 1937년 월탄 박종화의 단편소설 ‘아랑의 정조’, 2002년 최인호의 소설 ‘몽유도원도’와 이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숱하게 재창조됐던 이 이야기의 원전은 전설집이 아니라 정식 역사서인 ‘삼국사기’ 도미열전(都彌列傳)이다. 소장 고대사학자인 박대재(朴大在) 박사(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최근 신라사학회 발표문 ‘삼국사기 도미열전의 세계’를 통해 이 ‘실제 이야기’에 담긴 세 가지 미스터리를 분석했다.
도미 이야기의 ‘왕’은 흔히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사로잡혀 죽음을 당했던 백제 21대 개로왕(蓋鹵王·재위 455~475년)으로 여겨졌다. 열전에 잔학무도하게 묘사된 모습이 역사상의 실정(失政)과 들어맞기 때문. 그러나 박 박사는 “원문에 개루왕(蓋婁王)이라고 기록된 것을 뒤집을 근거는 없다”고 말한다. 백제 제4대 왕인 개루왕(재위 128~166년)은 ‘삼국사기’ 본기에 “성품이 공손하고 행동이 단정했다”고 기록돼 있어 도미열전의 ‘왕’과는 다른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절대 권력자로서의 이성적인 왕’과 ‘한 여자를 얻기 위해 집요함을 보이는 감정적인 왕’은 같은 인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도미와 그 아내가 배를 타고 달아난 곳은 어디일까? 현재 도미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는 곳은 서울 광진구·강동구, 경기 하남, 충남 보령, 경남 진해 등 전국 여러 지점으로 일부 지역에선 행사까지 열리고 있다. 하지만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이 초기 백제의 왕성으로 유력해진 지금, 우선 보령과 진해는 지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도미 부부가 상봉한 ‘천성도’는 임진강이나 예성강 하류의 섬이라는 것이 정설이니 이들 부부가 탄 배는 한강 하류로 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왕성을 황급히 빠져나온 도미의 아내가 배를 탄 곳은 풍납토성 서남쪽, 지금의 송파구 잠실 부근 한강변 어느 곳이라 보아야 한다.
과연 도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기록에 ‘호적에 편제된 작은 백성(편호소민·編戶小民)’이라 돼 있어 그 신분은 ‘양인(良人) 농민’ 정도로 생각돼 왔다. 그러나 과연 일반 농민이 계집종(婢子)을 거느릴 수 있었을까? 박 박사는 “신분상으로는 소민(小民)이라 해도 상당한 경제력을 갖춘 계층일 것”이라 말한다. 배를 타고 바다 쪽으로 달아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마한의 하호(下戶)는 중국 군현과의 교역에 종사하던 상인 계층으로 생각되는데, 도미는 바로 이들의 일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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