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에 도움이 되십시오-7
작성자 곽병희
본문
지난 시간에는 <말하려는 시 쓰기> 에 대해 알아봤으니, 이번 시간에는 <그리려는 시 쓰기>에 대해 함께 알아보기로 할까요? 미국의 신비평가 랜섬(J. C. Ransom)의 분류에 의하면, 말하려는 시는 관념시(platonic poetry), 그리려는 시는 <즉물시(physical poetry)>에 해당합니다.
그리려는 시 쓰기에 앞장 선 사람들로는 흄(T. E. Hulme), 파운드(E. Pound), 로우엘(A, Lowel), 두우리틀(H. Doolittle), 알딩턴(R. Aldington) 등이 주축이 된 이미지스트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고등 교육이 보편화되고, 독자들의 의식 수준이 시인들과 비슷해짐에 따라 더 이상 시인의 하소연이나 설교를 들으려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계문학사를 살펴보면 그리려는 시는 이들이 처음 쓴 게 아닙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일찍부터 이런 시를 써왔습니다. 중국의 한문은 상형성(象形性)이 강하고 우리말과 일본어는 감각어가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이 운동을 주도해온 파운드가 중국의 당시(唐詩)와 일본의 와까(和歌) 하이꾸(俳句) 등을 번역하여 이미지즘 운동의 전범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것은 향가나 우리의 한시를 살펴보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구름을) 열치매
나타난 달이
흰구름 쫓아 떠가는 것 아니냐
새파란 냇가에
기랑의 모습이 있어라
이로부터 냇가 조약돌에
낭이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좇고 싶어라
아으, 잣가지 높아
서리를 모를 화반(화랑장)이여
-충담사,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전문
ⓑ비 그친 강나루 긴 언덕에 풀빛만 날로 푸르러가는데(雨歇長堤草色多)
남포로 님 보내는 슬픈 노래만 허공 가득 떠도네(送君南浦動悲歌)
해마다 이별의 눈물을 보태 푸른 물결 넘실대는데(別淚年年添綠派)
대동강 물 언제 말라 임 만나거 갈꼬(大洞江水何時盡)
- 정지상(鄭知常), [송인(送人)]
이미지를 강화시킨 작품만 골랐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우리말과 인구어를 비교해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 <붉다>다는 낱말은 ´red´과 ´reddish´ 두 개밖에 없지만, 우리말에는 ´붉다´·´불그스름하다´·´볼그스름하다´·´발그스름하다´·´불긋불긋하다´·´빨긋빨긋하다´·´뿔긋뿔긋하다´·´빨갛다´·´시뻘겋다´·´새빨갛다´·´검붉다´·´불그죽죽하다´ 등 이루 다 열거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는 시>는 무엇을 그리려 하느냐에 따라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시인의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그리려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시인의 내부에서 일렁이는 정서, 무의식, 상상의 결과 등을 그리려는 유형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그리려 하느냐에 따라 시를 쓰는 방법도 달라집니다.
그러면 먼저 시인의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그리는 방법부터 살펴보기로 할까요?
외부의 대상을 그리려면 먼저 언어의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을 그리려 할 때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시인은 자기가 거론하는 사물의 모습을 떠올리며 쓰고 있지만, 독자들은 시인이 말한 것의 의미만 받아들이고 사물의 모습을 떠올리지 못하기가 일쑤라는 점입니다. 언어는 사물에 부여한 자의적 명칭으로서, 아래처럼 <시인-언어>, <시인-사물>은 직접적인 관계이지만, <언어-사물>은 간접적인 관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다운 받아 읽어야 도표가 보입니다.)
(Language)독서의 출발 → (Object)
그러므로, 시인이 말한 대로 독자가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언어>와 <사물>의 관계를 강화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언어에 따라 사물의 모습을 환기(喚起))시키는 정도가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가령 어떤 시인이 시를 쓸 때, ´꽃이 피었다´라고 썼다고 합시다. 그 시인은 그 꽃이 ´개나리´인지 ´장미´인지 알고 씁니다. 그리고 어디에 어떻게 피었는지도 알고 씁니다. 그러나, 그 꽃을 목격하지 않은 독자들은 무슨 꽃인지, 어디에 어떻게 피었는디 모릅니다. 그러므로, 먼저 ´장미´라든지 ´개나리´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의미의 레벨(meaning level)´을 높혀 써야 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이 종(種)을 이야기하는 정도에서 그 꽃의 모습을 떠올리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같은 장미라고 해도 조세핀도 있고, 에스메랄드도 있고, 빨간 장미도 있고, 노란 장미도 있고, 빨간 색도 새빨간 색도 있고, 불그스름한 색도 있고, 볼그스름한 색도 있고…. 그리고, 언제 어디에 어떻게 피었느냐에 따라서 달리보입니다. 그러므로, 되도록 문장을 이루는 각 성분의 의미 등급을 높혀서 표현해야 합니다. 한번 제가 단계별로 높이며 표현해 볼까요?
①꽃이 피었다. ②장미가 피었다. ③에스메랄다가 피었다. ④붉은 에스메랄다가 피었다. ⑤발그스름한 에스메랄다가 피었다. ⑥발그스름한 에스메랄다가 반쯤 봉오리를 열었다. ⑦뜨락 한구석, 에스메랄다가 반쯤 봉오리를 열었다. ⑧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뜨락 한구석 발그스름한 에스메랄다가 반쯤 봉오리를 열었다. ⑨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뜨락 한구석 발그스름한 에스메랄다가 반쯤 봉오리를 연 채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다. ⑩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뜨락 한구석 발그스름한 에스메랄다가 반쯤 봉오리를 연 채 하늘하늘 흔들리면서 아찔한 향기를 흩뿌리고 있다.
어떼요? <꽃→장미→에스메랄다→붉은 에스메랄다→발그스름한 에스메랄다>, 그리고, 서술부를 <피었다→반쯤 봉오리를 열었다→반쯤 봉오리를 연 채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다→반쯤 봉오리를 연 채 하늘하늘 흔들리면서 아찔한 향기를 흩뿌리고 있다>처럼 구체화하니까 직접 보고 있는 느낌이 들지요?
이런 능력은 글을 쓰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에 속합니다. 그리고 타고나는 게 아닙니다. 빨리 말하지 말고, 차츰차츰 의미를 좁혀가며 말하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그리고 문장의 각 성분을 구체화하여 전체 길이가 길어지면 적당한 길이로 잘라 다른 문장으로 만들면 됩니다.
이와 같이 이미지화를 할 때는 두 가지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대상을 정적(靜的)으로 그리기보다 동적(動的)으로 그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시각적인 것만 그리지 말고,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같은 것들까지 포함하여 공감각적(共感覺的)으로 그리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그것은 앞의 예 가운데 정지태(靜止態)로 그린 ⑧ 이전의 것들과 동태(動態)로 그린 ⑨, 그리고 시각에 후각을 첨가시킨 ⑩을 비교해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식 활동은 단일한 자극보다 총체적인 자극을 받았을 때 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말하려는 시와 달리 리듬화를 방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리듬은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하려는 시를 쓸 때는 독자들이 시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들려면 무엇보다 리듬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미지는 곰곰이 생각하며 읽을 때 떠오릅니다. 그러므로 곰곰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리듬을 강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자아, 그럼 이미지화 방법을 쓴 작품 한 편을 감상하고, 이런 시의 문제점을 생각해 볼까요?
여울목에 몰린 은어(銀魚) 떼.
삐삐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빙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래애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 밭에
공작이 취했다
뛰자 뛰자 뚸어나 보자
강강수월래.
- 이동주(李東柱), [강강술래] 중에서
이 작품에는 <언제>·<어디서>에 해당하는 시간적·공간적 배경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두 연 모두가 시각적 이미지로 짜여져 있지만, 첫째 연은 정적(靜的)이고, 둘째 연은 동적(動的)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또 셋째 연은 청각과 시각을 결합시킨 공감각적 이미지로서 둘째 연보다 더 빠른 동적 이미지로 짜여져 있고, 넷째 연은 후각적인 이미지와 셋째 연보다 더 빠른 이미지로 짜여져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을 때, 달 밝은 밤 반짝이는 잔물결을 헤살대며 오르는 은어떼가 보이고, 빙글빙글 돌며 강강술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마주 잡은 손들의 따스한 체온이 전해져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시각 : 청각 : 후각>, <정적 : 동적>인 이미지가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언어로 자기 밖의 대상을 그리는 작품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약점이 있습니다. 파운드(E. Pound)가 이미지즘 대열에서 이탈하면서 자기 동료들을 비판했듯이, ´의미 없는 텅 빈 그림(meaningless picture)´로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작품 속에서 시인의 생각을 추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마음을 그릴 때는 되도록 낯선 것을 보조관념으로 택해야 한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자면 이미지스트들이 시에서 추방했던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다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사상과 감정은 보여줄 수 없는 관념의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것과 유사한 어떤 사물을 비유하는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떤 사물에 빗대어 말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에서,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원관념(tenor)>, 바꾸어 말하는 것은 <보조관념(vehicle)>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원관념을 , 보조관념을 라고 할 경우, 서로 다른 것을 동정화(同定化)하면서 라고 말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비유의 유형은 와 의 관계에 따라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유형으로는 우리가 흔히 은유(metaphor)라고 부르는 <치환은유(epiphor)>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유형으로는 상징(symbol)이라고 부르는 <확장은유(extensive metaphor)>, 세 째 유형으로는 원관념을 숨긴 여러 개의 치환은유를 비인과적으로 나열한 <병치은유(diaphor)>를 꼽을 수 있습니다. 종래 시론(詩論)에서 별개 유형으로 꼽아온 <직유>·<의인법>·<대유>·<제유>는 치환은유의 하위 유형에 속하고, 알레고리(allegory)는 치환은유와 확장은유의 중간 유형에 속합니다.
치환은유는 다시 보조관념이 하나냐 여러 개냐에 따라 <단순치환은유>와 <복합치환은유>로 나누고, 원관념이 겉으로 드러났느냐 숨겨졌느냐에 따라 <현시형 치환은유>와 <잠재형 치환은유>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확장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어떤 성질을 매개개념으로 삼아 연결하느냐에 따라 <개인적 상징>, <자연적 상징>, <문화적 상징>, <원형적 상징>으로, 병치은유는 병치한 자질들의 속성에 따라 <리듬 병치>, <이미지 병치>, <에피소드 병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확장은유는 보조관념으로 내세운 사물의 의미 가운데 시인이 말하려는 것과 같은 것을 골라 쓰는 방법으로서 치환은유의 기법만 터득하면 누구나 구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치은유는 시인이 제시한 모티프들을 독자 스스로 연결하여 의미를 창조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서, 앞의 두 유형과 전혀 다른 유형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병치은유에 대해서는 언어로써 사물을 창조하는 방식을 논의할 때 설명하기로 하고 이 강의에서는 치환은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비유가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서, 보조관념은 원관념보다 더 쉽고 평범하며 구체적이고 유사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원관념과 비슷하되, <관념→사물>·<추상→구상>·<특수→보편>으로 바꿔야 한다고 믿습니다. 관념보다는 사물이,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이 특수한 것보다는 보편적인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작품들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다음 작품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광화문(光化門)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宗敎).
- 서정주(徐廷柱), [광화문]에서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 김춘수(金春洙), [나의 하나님]에서
ⓒ내 침실(寢室)이 부활의 동굴(洞窟)임을
너는 알련만
- 이상화(李相和), [나의 침실로]에서
ⓐ에서는 ´광화문´이라는 구체물을 ´종교´라는 추상적 관념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하나님´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비애´라는 추상적인 관념과 ´살점´이라는 구체물로, ⓒ에서는 ´침실´이라는 구체물을 ´동굴´이라는 구체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①<추상→구상>, ②<구상→추상>, ③<추상→추상>, ④<구상→구상> 등 가능한 경우를 모두 택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유사하되 전체적으로는 다른 것으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바꾸는 걸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 상대가 내 말을 유의해 듣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화법을 가지고 따져보기로 합시다. 사람들은 누구나 처음 연애를 할 때는 상대가 지나가는 소리로 요구해도 다 들어줍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한 십년쯤 지난 뒤에는 ´여보! 나 힘들어 죽겠어, 도와줘.´해도 ´또 잔소리가 시작되었구나´하고 건성으로 듣기가 일쑤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식어서가 아닙니다. 아내가 늘 잔소리를 하여 남편에게는 자동화(自動化)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하소연 대신 하늘을 바라보며 하이얗게 웃다가 빤히 쳐다본다고 합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남편은 놀라 ´왜? 왜?´하고 물을 것입니다. 남편이 이와 같이 놀라는 것은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러시아 형식주의자 중에 한 사람인 쉬클로프스키(V. klovski)가 말했듯이, 늘 같은 방법으로 말하면 <자동화>되어 그냥 넘어가지만, 하이얗게 웃으며 침묵할 때는 <낯설게 만들어(defamilarization)> 긴장하고, 그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비유의 유형은 <산문적 비유(prosodic metaphor)>와 <시적 비유(poetic metaphor)>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산문에서는 <어려운 것→쉬운 것>으로, <추상적인 것→구체적인 것>으로 바꾸면서 독자의 이해를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시에서는 습관적으로 반응(stocked response)하지 못하도록 잘 아는 것을 낯선 것으로 바꾸는 시적 비유를 택해야 합니다. 위의 작품에서 채택한 비유들은 모두 시적 비유로서, 독자들의 원활한 독서를 고의적으로 방해하기 위한 장치(deliberately impeded contrivances)입니다.
시에서 사용하는 비유가 모두 알기 쉬운 것을 난해한 것으로 부꾸는 것이라니,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구요? 그럼 다음 문장들을 비교해 보세요.
ⓐ그녀는 아름답다.
ⓑ그녀는 빨갛게 핀 한 송이 꽃이다.
ⓒ그 여자는 아스라한 꿈길의 능선(稜線), 가뭇가뭇 내리는 어스름을 타고 하늘하늘 피어나는 한 송이 산나리이다.
어떼요? ⓐ는 누구나 다 알 수 있지요? 하지만, 그저 아름답다는 의미 이외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지요? 그리고 정신이 아름답다는 건지 외모가 아름답다는 건지, 젊은 여자인지 나이든 여자인지 알 수 없지요?
그러나 ⓑ는 좀 젊은 여자같다는 느낌이 들지요? 외모를 이야기하는 것 같구요. 그리고 ⓒ는 신비롭고, 가냘프며, 야성적이고, 관능적인 여자일 것 같은 생각이 들지요? 그냥 ´아름답다´고 말하면 될 것을 ´꽃´이라고 바꾸고, 그리고 어둠이 내리는 꿈길 속의 산등성이에서 피어나는 ´산나리꽃´으로 바꾼 것은 누구나 생각해보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낯설게 만드느냐구요?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말한 대로 독자들이 이해하도록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는 생각할 자료만 제공할 테니 내 생각을 알아 맞춰보라는 식으로 말하면 돼요.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구요? 그럼 위 예문을 이용하여 제가 쓰는 비결을 알려드릴 테니 그대로 해보세요. 우선 <아름다운 여인→꽃>으로 바꿔 보세요. 이 정도는 누구나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받아들이겠지요? 그럼 다시 한번 바꿔보세요. 그래서 <아름다운 여인→꽃→어둠 속에 하늘하늘 피어나는 산나리꽃>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서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면 다시 그 무엇으로 바꾸고, 그래도 부족하면 또 바꾸는 방식을 택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으로 계속 치환하면서, 독자가 시인이 말하려는 원관념을 파악할 둥 말 둥 한 단계까지 끌고 가는 게 제 방식입니다.
이 때 한 가지 유의할 게 있어요. ´그녀의 눈은 호수 같고, 입은 앵두 같다´는 식으로 각 부분을 따로따로 바꾸지 말고, ´그녀는 호수다´라든지, ´그녀는 앵두다´라는 식으로 전체를 그 무엇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느 한 부분을 바꾸는 <장식적 비유(decorative metaphor)>는 그 부분에 대한 이해가 끝나면 나머지는 다시 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에, 전체를 바꾸는 <본질적 비유(essential metaphor)>는 이야기 전체가 낯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시 다음 작품을 읽으면서 시적이면서 본질적인 비유를 택하면 어떤 효고가 나타나는가 함께 생각해 볼까요?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들었다.
- 전봉건(全鳳健), [피아노] 전문
이 시인은 아마 이 작품을 쓸 때 건반을 두드리는 하이얀 손가락과 그때마다 어깨 위에서 출렁이는 머릿결, 그리고 방안 가득 감도는 한없는 신비감을 함께 표현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쓰자면 손가락은 어떻고, 머릿결은 어떻다고 하는 장식적이고도 산문적인 비유를 택할 수밖에 없어 그 모든 것을 버리고 <피아노 선율(T)>에 초점을 맞춘 다음 그걸 다시 <물고기(V)>로 바꾸었을 겁니다.
그리고, 한번에 <피아노 선율→물고기>로 바꾼 게 아닐 겁니다. 아마도 <피아노 선율→살아서 퍼득이는 것 같다→살아서 퍼득이는 여러 생물→물고기>라는 단계를 거쳤을 겁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본질적이면서도 시적인 비유를 택하면 크게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의사주체(pseudo-subject)를 중심으로 작품 전체가 유기적 통일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유기적 통일성이 뭐냐구요? 작품의 의미적 국면에서부터 조직적 국면까지 연결되
그리려는 시 쓰기에 앞장 선 사람들로는 흄(T. E. Hulme), 파운드(E. Pound), 로우엘(A, Lowel), 두우리틀(H. Doolittle), 알딩턴(R. Aldington) 등이 주축이 된 이미지스트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고등 교육이 보편화되고, 독자들의 의식 수준이 시인들과 비슷해짐에 따라 더 이상 시인의 하소연이나 설교를 들으려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계문학사를 살펴보면 그리려는 시는 이들이 처음 쓴 게 아닙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일찍부터 이런 시를 써왔습니다. 중국의 한문은 상형성(象形性)이 강하고 우리말과 일본어는 감각어가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이 운동을 주도해온 파운드가 중국의 당시(唐詩)와 일본의 와까(和歌) 하이꾸(俳句) 등을 번역하여 이미지즘 운동의 전범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것은 향가나 우리의 한시를 살펴보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구름을) 열치매
나타난 달이
흰구름 쫓아 떠가는 것 아니냐
새파란 냇가에
기랑의 모습이 있어라
이로부터 냇가 조약돌에
낭이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좇고 싶어라
아으, 잣가지 높아
서리를 모를 화반(화랑장)이여
-충담사,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전문
ⓑ비 그친 강나루 긴 언덕에 풀빛만 날로 푸르러가는데(雨歇長堤草色多)
남포로 님 보내는 슬픈 노래만 허공 가득 떠도네(送君南浦動悲歌)
해마다 이별의 눈물을 보태 푸른 물결 넘실대는데(別淚年年添綠派)
대동강 물 언제 말라 임 만나거 갈꼬(大洞江水何時盡)
- 정지상(鄭知常), [송인(送人)]
이미지를 강화시킨 작품만 골랐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우리말과 인구어를 비교해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 <붉다>다는 낱말은 ´red´과 ´reddish´ 두 개밖에 없지만, 우리말에는 ´붉다´·´불그스름하다´·´볼그스름하다´·´발그스름하다´·´불긋불긋하다´·´빨긋빨긋하다´·´뿔긋뿔긋하다´·´빨갛다´·´시뻘겋다´·´새빨갛다´·´검붉다´·´불그죽죽하다´ 등 이루 다 열거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는 시>는 무엇을 그리려 하느냐에 따라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시인의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그리려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시인의 내부에서 일렁이는 정서, 무의식, 상상의 결과 등을 그리려는 유형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그리려 하느냐에 따라 시를 쓰는 방법도 달라집니다.
그러면 먼저 시인의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그리는 방법부터 살펴보기로 할까요?
외부의 대상을 그리려면 먼저 언어의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을 그리려 할 때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시인은 자기가 거론하는 사물의 모습을 떠올리며 쓰고 있지만, 독자들은 시인이 말한 것의 의미만 받아들이고 사물의 모습을 떠올리지 못하기가 일쑤라는 점입니다. 언어는 사물에 부여한 자의적 명칭으로서, 아래처럼 <시인-언어>, <시인-사물>은 직접적인 관계이지만, <언어-사물>은 간접적인 관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다운 받아 읽어야 도표가 보입니다.)
(Language)독서의 출발 → (Object)
그러므로, 시인이 말한 대로 독자가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언어>와 <사물>의 관계를 강화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언어에 따라 사물의 모습을 환기(喚起))시키는 정도가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가령 어떤 시인이 시를 쓸 때, ´꽃이 피었다´라고 썼다고 합시다. 그 시인은 그 꽃이 ´개나리´인지 ´장미´인지 알고 씁니다. 그리고 어디에 어떻게 피었는지도 알고 씁니다. 그러나, 그 꽃을 목격하지 않은 독자들은 무슨 꽃인지, 어디에 어떻게 피었는디 모릅니다. 그러므로, 먼저 ´장미´라든지 ´개나리´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의미의 레벨(meaning level)´을 높혀 써야 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이 종(種)을 이야기하는 정도에서 그 꽃의 모습을 떠올리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같은 장미라고 해도 조세핀도 있고, 에스메랄드도 있고, 빨간 장미도 있고, 노란 장미도 있고, 빨간 색도 새빨간 색도 있고, 불그스름한 색도 있고, 볼그스름한 색도 있고…. 그리고, 언제 어디에 어떻게 피었느냐에 따라서 달리보입니다. 그러므로, 되도록 문장을 이루는 각 성분의 의미 등급을 높혀서 표현해야 합니다. 한번 제가 단계별로 높이며 표현해 볼까요?
①꽃이 피었다. ②장미가 피었다. ③에스메랄다가 피었다. ④붉은 에스메랄다가 피었다. ⑤발그스름한 에스메랄다가 피었다. ⑥발그스름한 에스메랄다가 반쯤 봉오리를 열었다. ⑦뜨락 한구석, 에스메랄다가 반쯤 봉오리를 열었다. ⑧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뜨락 한구석 발그스름한 에스메랄다가 반쯤 봉오리를 열었다. ⑨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뜨락 한구석 발그스름한 에스메랄다가 반쯤 봉오리를 연 채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다. ⑩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뜨락 한구석 발그스름한 에스메랄다가 반쯤 봉오리를 연 채 하늘하늘 흔들리면서 아찔한 향기를 흩뿌리고 있다.
어떼요? <꽃→장미→에스메랄다→붉은 에스메랄다→발그스름한 에스메랄다>, 그리고, 서술부를 <피었다→반쯤 봉오리를 열었다→반쯤 봉오리를 연 채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다→반쯤 봉오리를 연 채 하늘하늘 흔들리면서 아찔한 향기를 흩뿌리고 있다>처럼 구체화하니까 직접 보고 있는 느낌이 들지요?
이런 능력은 글을 쓰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에 속합니다. 그리고 타고나는 게 아닙니다. 빨리 말하지 말고, 차츰차츰 의미를 좁혀가며 말하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그리고 문장의 각 성분을 구체화하여 전체 길이가 길어지면 적당한 길이로 잘라 다른 문장으로 만들면 됩니다.
이와 같이 이미지화를 할 때는 두 가지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대상을 정적(靜的)으로 그리기보다 동적(動的)으로 그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시각적인 것만 그리지 말고,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같은 것들까지 포함하여 공감각적(共感覺的)으로 그리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그것은 앞의 예 가운데 정지태(靜止態)로 그린 ⑧ 이전의 것들과 동태(動態)로 그린 ⑨, 그리고 시각에 후각을 첨가시킨 ⑩을 비교해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식 활동은 단일한 자극보다 총체적인 자극을 받았을 때 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말하려는 시와 달리 리듬화를 방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리듬은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하려는 시를 쓸 때는 독자들이 시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들려면 무엇보다 리듬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미지는 곰곰이 생각하며 읽을 때 떠오릅니다. 그러므로 곰곰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리듬을 강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자아, 그럼 이미지화 방법을 쓴 작품 한 편을 감상하고, 이런 시의 문제점을 생각해 볼까요?
여울목에 몰린 은어(銀魚) 떼.
삐삐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빙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래애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 밭에
공작이 취했다
뛰자 뛰자 뚸어나 보자
강강수월래.
- 이동주(李東柱), [강강술래] 중에서
이 작품에는 <언제>·<어디서>에 해당하는 시간적·공간적 배경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두 연 모두가 시각적 이미지로 짜여져 있지만, 첫째 연은 정적(靜的)이고, 둘째 연은 동적(動的)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또 셋째 연은 청각과 시각을 결합시킨 공감각적 이미지로서 둘째 연보다 더 빠른 동적 이미지로 짜여져 있고, 넷째 연은 후각적인 이미지와 셋째 연보다 더 빠른 이미지로 짜여져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을 때, 달 밝은 밤 반짝이는 잔물결을 헤살대며 오르는 은어떼가 보이고, 빙글빙글 돌며 강강술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마주 잡은 손들의 따스한 체온이 전해져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시각 : 청각 : 후각>, <정적 : 동적>인 이미지가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언어로 자기 밖의 대상을 그리는 작품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약점이 있습니다. 파운드(E. Pound)가 이미지즘 대열에서 이탈하면서 자기 동료들을 비판했듯이, ´의미 없는 텅 빈 그림(meaningless picture)´로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작품 속에서 시인의 생각을 추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마음을 그릴 때는 되도록 낯선 것을 보조관념으로 택해야 한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자면 이미지스트들이 시에서 추방했던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다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사상과 감정은 보여줄 수 없는 관념의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것과 유사한 어떤 사물을 비유하는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떤 사물에 빗대어 말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에서,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원관념(tenor)>, 바꾸어 말하는 것은 <보조관념(vehicle)>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원관념을 , 보조관념을 라고 할 경우, 서로 다른 것을 동정화(同定化)하면서 라고 말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비유의 유형은 와 의 관계에 따라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유형으로는 우리가 흔히 은유(metaphor)라고 부르는 <치환은유(epiphor)>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유형으로는 상징(symbol)이라고 부르는 <확장은유(extensive metaphor)>, 세 째 유형으로는 원관념을 숨긴 여러 개의 치환은유를 비인과적으로 나열한 <병치은유(diaphor)>를 꼽을 수 있습니다. 종래 시론(詩論)에서 별개 유형으로 꼽아온 <직유>·<의인법>·<대유>·<제유>는 치환은유의 하위 유형에 속하고, 알레고리(allegory)는 치환은유와 확장은유의 중간 유형에 속합니다.
치환은유는 다시 보조관념이 하나냐 여러 개냐에 따라 <단순치환은유>와 <복합치환은유>로 나누고, 원관념이 겉으로 드러났느냐 숨겨졌느냐에 따라 <현시형 치환은유>와 <잠재형 치환은유>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확장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어떤 성질을 매개개념으로 삼아 연결하느냐에 따라 <개인적 상징>, <자연적 상징>, <문화적 상징>, <원형적 상징>으로, 병치은유는 병치한 자질들의 속성에 따라 <리듬 병치>, <이미지 병치>, <에피소드 병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확장은유는 보조관념으로 내세운 사물의 의미 가운데 시인이 말하려는 것과 같은 것을 골라 쓰는 방법으로서 치환은유의 기법만 터득하면 누구나 구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치은유는 시인이 제시한 모티프들을 독자 스스로 연결하여 의미를 창조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서, 앞의 두 유형과 전혀 다른 유형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병치은유에 대해서는 언어로써 사물을 창조하는 방식을 논의할 때 설명하기로 하고 이 강의에서는 치환은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비유가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서, 보조관념은 원관념보다 더 쉽고 평범하며 구체적이고 유사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원관념과 비슷하되, <관념→사물>·<추상→구상>·<특수→보편>으로 바꿔야 한다고 믿습니다. 관념보다는 사물이,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이 특수한 것보다는 보편적인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작품들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다음 작품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광화문(光化門)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宗敎).
- 서정주(徐廷柱), [광화문]에서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 김춘수(金春洙), [나의 하나님]에서
ⓒ내 침실(寢室)이 부활의 동굴(洞窟)임을
너는 알련만
- 이상화(李相和), [나의 침실로]에서
ⓐ에서는 ´광화문´이라는 구체물을 ´종교´라는 추상적 관념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하나님´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비애´라는 추상적인 관념과 ´살점´이라는 구체물로, ⓒ에서는 ´침실´이라는 구체물을 ´동굴´이라는 구체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①<추상→구상>, ②<구상→추상>, ③<추상→추상>, ④<구상→구상> 등 가능한 경우를 모두 택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유사하되 전체적으로는 다른 것으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바꾸는 걸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 상대가 내 말을 유의해 듣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화법을 가지고 따져보기로 합시다. 사람들은 누구나 처음 연애를 할 때는 상대가 지나가는 소리로 요구해도 다 들어줍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한 십년쯤 지난 뒤에는 ´여보! 나 힘들어 죽겠어, 도와줘.´해도 ´또 잔소리가 시작되었구나´하고 건성으로 듣기가 일쑤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식어서가 아닙니다. 아내가 늘 잔소리를 하여 남편에게는 자동화(自動化)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하소연 대신 하늘을 바라보며 하이얗게 웃다가 빤히 쳐다본다고 합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남편은 놀라 ´왜? 왜?´하고 물을 것입니다. 남편이 이와 같이 놀라는 것은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러시아 형식주의자 중에 한 사람인 쉬클로프스키(V. klovski)가 말했듯이, 늘 같은 방법으로 말하면 <자동화>되어 그냥 넘어가지만, 하이얗게 웃으며 침묵할 때는 <낯설게 만들어(defamilarization)> 긴장하고, 그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비유의 유형은 <산문적 비유(prosodic metaphor)>와 <시적 비유(poetic metaphor)>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산문에서는 <어려운 것→쉬운 것>으로, <추상적인 것→구체적인 것>으로 바꾸면서 독자의 이해를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시에서는 습관적으로 반응(stocked response)하지 못하도록 잘 아는 것을 낯선 것으로 바꾸는 시적 비유를 택해야 합니다. 위의 작품에서 채택한 비유들은 모두 시적 비유로서, 독자들의 원활한 독서를 고의적으로 방해하기 위한 장치(deliberately impeded contrivances)입니다.
시에서 사용하는 비유가 모두 알기 쉬운 것을 난해한 것으로 부꾸는 것이라니,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구요? 그럼 다음 문장들을 비교해 보세요.
ⓐ그녀는 아름답다.
ⓑ그녀는 빨갛게 핀 한 송이 꽃이다.
ⓒ그 여자는 아스라한 꿈길의 능선(稜線), 가뭇가뭇 내리는 어스름을 타고 하늘하늘 피어나는 한 송이 산나리이다.
어떼요? ⓐ는 누구나 다 알 수 있지요? 하지만, 그저 아름답다는 의미 이외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지요? 그리고 정신이 아름답다는 건지 외모가 아름답다는 건지, 젊은 여자인지 나이든 여자인지 알 수 없지요?
그러나 ⓑ는 좀 젊은 여자같다는 느낌이 들지요? 외모를 이야기하는 것 같구요. 그리고 ⓒ는 신비롭고, 가냘프며, 야성적이고, 관능적인 여자일 것 같은 생각이 들지요? 그냥 ´아름답다´고 말하면 될 것을 ´꽃´이라고 바꾸고, 그리고 어둠이 내리는 꿈길 속의 산등성이에서 피어나는 ´산나리꽃´으로 바꾼 것은 누구나 생각해보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낯설게 만드느냐구요?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말한 대로 독자들이 이해하도록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는 생각할 자료만 제공할 테니 내 생각을 알아 맞춰보라는 식으로 말하면 돼요.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구요? 그럼 위 예문을 이용하여 제가 쓰는 비결을 알려드릴 테니 그대로 해보세요. 우선 <아름다운 여인→꽃>으로 바꿔 보세요. 이 정도는 누구나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받아들이겠지요? 그럼 다시 한번 바꿔보세요. 그래서 <아름다운 여인→꽃→어둠 속에 하늘하늘 피어나는 산나리꽃>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서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면 다시 그 무엇으로 바꾸고, 그래도 부족하면 또 바꾸는 방식을 택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으로 계속 치환하면서, 독자가 시인이 말하려는 원관념을 파악할 둥 말 둥 한 단계까지 끌고 가는 게 제 방식입니다.
이 때 한 가지 유의할 게 있어요. ´그녀의 눈은 호수 같고, 입은 앵두 같다´는 식으로 각 부분을 따로따로 바꾸지 말고, ´그녀는 호수다´라든지, ´그녀는 앵두다´라는 식으로 전체를 그 무엇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느 한 부분을 바꾸는 <장식적 비유(decorative metaphor)>는 그 부분에 대한 이해가 끝나면 나머지는 다시 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에, 전체를 바꾸는 <본질적 비유(essential metaphor)>는 이야기 전체가 낯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시 다음 작품을 읽으면서 시적이면서 본질적인 비유를 택하면 어떤 효고가 나타나는가 함께 생각해 볼까요?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들었다.
- 전봉건(全鳳健), [피아노] 전문
이 시인은 아마 이 작품을 쓸 때 건반을 두드리는 하이얀 손가락과 그때마다 어깨 위에서 출렁이는 머릿결, 그리고 방안 가득 감도는 한없는 신비감을 함께 표현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쓰자면 손가락은 어떻고, 머릿결은 어떻다고 하는 장식적이고도 산문적인 비유를 택할 수밖에 없어 그 모든 것을 버리고 <피아노 선율(T)>에 초점을 맞춘 다음 그걸 다시 <물고기(V)>로 바꾸었을 겁니다.
그리고, 한번에 <피아노 선율→물고기>로 바꾼 게 아닐 겁니다. 아마도 <피아노 선율→살아서 퍼득이는 것 같다→살아서 퍼득이는 여러 생물→물고기>라는 단계를 거쳤을 겁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본질적이면서도 시적인 비유를 택하면 크게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의사주체(pseudo-subject)를 중심으로 작품 전체가 유기적 통일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유기적 통일성이 뭐냐구요? 작품의 의미적 국면에서부터 조직적 국면까지 연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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