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어린이책] 외삼촌 가라사대 “넌 수학문제 중독증”
가짜 한의사 외삼촌 최미선 지음, 이민선 그림, 문원, 176쪽, 9000원
아이들은 좋아할 만하지만 엄마는 그리 사 주고 싶지 않은 어린이 책이 종종 있다. 잔재미만 넘치는 책들도 그렇지만 우리 현실의 모순을 은근히 꼬집는 이야기도 꺼린다. 사교육이나 영어 교육열 등 요즘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유쾌하게 풍자한 일곱 편의 단편 동화를 모은 이 책도 그렇다.
외삼촌은 ‘내’가 다니는 척척학원의 수학강사다. 척척학원 원장인 엄마가 학교 선생님 자격시험을 준비하던 외삼촌에게 강의를 부탁한 때문이다.
그런데 이 외삼촌이 괴짜다. 학생들에게 느닷없이 병명을 알려주고는 엉터리 처방을 한다. 침도 놓는다. 수학 문제 푸는 데 열심인 우성이를 진맥하고는 문제만 보면 풀지 않고 못 배기는 ‘수학 문제 중독증’에 걸렸다고 진단한다. 그러고는 ‘초록색 결핍증’이 덩달아 생긴다며 특효약이라고 민들레 잎사귀를 일곱 번 뜯어먹고 5분 정도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난 뒤 산을 쳐다보며 심호흡을 하라고 권한다.
학교를 마친 뒤 엄마 학원에서 오후 내내 보내는 조카에겐 ‘학원 도깨비 병’에 걸렸다며 돈 한 푼 없이 혼자 시장을 돌아다니는 게 특효약이라 말해준다. 나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플라스틱 소쿠리에 시금치를 담아놓고 파는 할머니, 수레를 끌며 노래를 부르는 장애인 아저씨, 붕어빵을 구워 파는 포장마차 등을 구경한다. 그러면서 까닭 모를 슬픔에 젖고 나서 사람이 변한다. 반찬이 없는 밥을 먹을 때도 맛없다는 소리를 않고 혼자 밥을 먹을 때도 맛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외삼촌의 한의사 흉내는 오래가지 못한다. 수학 문제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푼 창민이에게 문제 푸는 로봇이 되는 걸 막아준다며 줄넘기 800번에 3분 동안 냉이꽃으로 얼굴을 쓰다듬으란 처방을 내린 탓이다. 줄넘기를 해서 땀을 흘리고 돌아온 창민이를 본 창민이 엄마가 학원에 항의하는 바람에 외삼촌은 학원버스 운전기사로 바뀐다. 그걸 보고 나는 엄마들이 ‘신경성 점수 집착증’에 걸린 듯하다고 생각한다. 표제작인 ‘가짜 한의사 외삼촌’의 줄거리다.
이 밖에 영어교육을 위해 자식을 외국으로 입양시키려는 엄마를 아들의 눈으로 바라본 ‘사과꽃보다 달콤한 향기’도 만만찮다. 영어에 목숨을 건 엄마와 달리 주인공인 나는 골목 축구대회에만 관심이 있다. 결국 외할머니가 엄마의 중학교 시절 노트를 꺼내 엄마도 한때 한글을 사랑하는 순진한 학생이었다는 걸 일깨워줘 문제가 일단 풀리는 얘기다.
현실 풍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은이가 지방에서 활동하는 덕인지 들고양이와 집고양이가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그린 ‘들고양이 도돌이’, 서먹했던 아이들이 고래 구경을 계기로 서로 가까워지는 ‘은빛 고래 마중’ 등 도시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자연친화적 이야기도 있다. 한국화풍의 삽화가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엄마들은 당장 “앗, 뜨거워라”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그리고 자기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 보기를 원한다면 눈 딱 감고 권할 만한 씩씩하고 유쾌한 책이다.
김성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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