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몰랐던 경남문학지대-마산 결핵 요양소
작성자 mun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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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고개에서 내려다 본 국립마산병원(1948년). 삼방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동쪽으로 호수 같은 마산 바다가 보인다. /사진출처=국립마산병원 연보(2005년)
◇ 한국문학사 최초의 ´사나토리움(요양지·sanatorium) 동인지´ = 당시는 요즘과는 달리 ´결핵´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던 때였다. 그래서 결핵 환자들은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긴 시간과의 싸움이었고, 죽음의 그림자와 대면하는 고투의 연속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군의 젊은이들이 펴낸 <청포도>의 모습은 어땠을까?
일단 이들은 <청포도> 발간사(1952)에서 '유파나 경향을 같이 하는 시인의 동인지이기 전에 먼저 동일한 환경에 처해 있는 투병자의 동인지이고자 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얼핏 보면, 아주 단순한 발간 목적이 아닐 수 없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병을 앓는 이들끼리 모여 문학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핵문학´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 마산문학관 한정호 학예사는 <청포도>의 의의를 결코 가볍게 보지 않고 있다. '<청포도>는 1950년대 초반의 경남지역이 지니는 문화적 특성에서 나온 성과물 가운데 하나였다. 마산의 특정 장소인 국립마산요양소에서 결핵을 앓던 시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던 <청포도>는 지역문학사(넓게는 한국문학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서 그 가치를 지난다고 하겠다.(각혈로써 꽃피운 사나토리움 동인지 <청포도> 중)'
<청포도> 동인들 역시 '순수한 희열로서의 예술이나 투병자 상호간의 위안만의 위치에 안주하여 스스로 문학의 한 구석으로 오물어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발간사)'는 당당한 포부를 내세우고 있다.
◇ <청포도>의 의의 = <청포도> 동인들은 동인지를 발행하는 틈틈이 지역 문인들과 교류하며 의미있는 작업들을 하나씩 해나간다. 그 상징적인 행사가 1953년 마산결핵요양소 강당에서 문총 마산지부와 공동주최하고 마산일보가 후원한 ´시와 음악의 밤´이었다.
이러한 <청포도>의 활동은 ´한국전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피란 온 문인들이 마산 지역 문인들과 활발한 문학활동을 전개했던 분위기가 그대로 <청포도>에서 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포도>의 탄생은 이렇듯, 통시적으로는 ´결핵 요양원´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각혈했던 문학인´들이 모여 들었던 역사적 사실과 맞닿아 있고, 공시적으로는 1950년대 마산지역 문학판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다.
<청포도>는 1954년 4집 발간을 끝으로 종간된다. 동인들의 퇴원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시로써 생명을 기른다'는 ´청포도들의 간절함´은 지역사회에 의미있는 문학적 향기를 흩뿌렸다. 물론 그때의 지역문학은 곧 한국문학이기도 했다.
´사나토리움 동인지 <청포도> (하)´에서는 청포도 동인들의 면면과, 그들을 통해 1950년대 ´마산 결핵요양소´ 풍경의 한 단면을 그려보겠다. 또 <청포도> 창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김대규(77·대한결핵협회 고문) 씨의 눈에 띄는 이력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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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몰랐던 경남문학지대]⑦사나토리움 동인지 <청포도>(상) | ||||
결핵과 싸우며 잉태한 1950년대 마산의 흔적 문학 청년들, 마산 결핵 요양소서 ´문학 향기´ 흩뿌려 틈틈이 지역 문인들과 교류…동인들 퇴원, 4집으로 종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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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고개에서 내려다 본 국립마산병원(1948년). 삼방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동쪽으로 호수 같은 마산 바다가 보인다. /사진출처=국립마산병원 연보(2005년)
◇ 한국문학사 최초의 ´사나토리움(요양지·sanatorium) 동인지´ = 당시는 요즘과는 달리 ´결핵´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던 때였다. 그래서 결핵 환자들은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긴 시간과의 싸움이었고, 죽음의 그림자와 대면하는 고투의 연속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군의 젊은이들이 펴낸 <청포도>의 모습은 어땠을까?
일단 이들은 <청포도> 발간사(1952)에서 '유파나 경향을 같이 하는 시인의 동인지이기 전에 먼저 동일한 환경에 처해 있는 투병자의 동인지이고자 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얼핏 보면, 아주 단순한 발간 목적이 아닐 수 없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병을 앓는 이들끼리 모여 문학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핵문학´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 마산문학관 한정호 학예사는 <청포도>의 의의를 결코 가볍게 보지 않고 있다. '<청포도>는 1950년대 초반의 경남지역이 지니는 문화적 특성에서 나온 성과물 가운데 하나였다. 마산의 특정 장소인 국립마산요양소에서 결핵을 앓던 시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던 <청포도>는 지역문학사(넓게는 한국문학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서 그 가치를 지난다고 하겠다.(각혈로써 꽃피운 사나토리움 동인지 <청포도> 중)'
<청포도> 동인들 역시 '순수한 희열로서의 예술이나 투병자 상호간의 위안만의 위치에 안주하여 스스로 문학의 한 구석으로 오물어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발간사)'는 당당한 포부를 내세우고 있다.
◇ <청포도>의 의의 = <청포도> 동인들은 동인지를 발행하는 틈틈이 지역 문인들과 교류하며 의미있는 작업들을 하나씩 해나간다. 그 상징적인 행사가 1953년 마산결핵요양소 강당에서 문총 마산지부와 공동주최하고 마산일보가 후원한 ´시와 음악의 밤´이었다.
이러한 <청포도>의 활동은 ´한국전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피란 온 문인들이 마산 지역 문인들과 활발한 문학활동을 전개했던 분위기가 그대로 <청포도>에서 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포도>의 탄생은 이렇듯, 통시적으로는 ´결핵 요양원´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각혈했던 문학인´들이 모여 들었던 역사적 사실과 맞닿아 있고, 공시적으로는 1950년대 마산지역 문학판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다.
<청포도>는 1954년 4집 발간을 끝으로 종간된다. 동인들의 퇴원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시로써 생명을 기른다'는 ´청포도들의 간절함´은 지역사회에 의미있는 문학적 향기를 흩뿌렸다. 물론 그때의 지역문학은 곧 한국문학이기도 했다.
´사나토리움 동인지 <청포도> (하)´에서는 청포도 동인들의 면면과, 그들을 통해 1950년대 ´마산 결핵요양소´ 풍경의 한 단면을 그려보겠다. 또 <청포도> 창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김대규(77·대한결핵협회 고문) 씨의 눈에 띄는 이력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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