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끈한 양장본 시집이다. 책의 뒷면엔 ´탄탄한 언어, 절제된 감성…흔들림 없는 시학!´이라는 수식어구가 박혀 있다. 책의 앞표지를 거의 뒤덮다시피 장식한 ´하연승 시집 나비의 생태학´이라는 표제도 그렇고 너무 호들갑 스럽지는 않은지 생각했는데, 어이쿠! 막상 책 속으로 빠져들고 보니 ´호들갑스런 편견´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비의 생태학>(동학사)은 꾸준하게 시밭을 일구어 온 한 노 시인의 웅숭깊은 눈길이 그대로 느껴지는 시집이다. 하연승(74)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다.
하연승 시인은 꼭 10년 전에 첫 시집을 펴낸 적이 있다. 굳이 시인의 ´시력´을 따지자면 50년도 훨씬 넘지만, 직장생활 등의 이유로 첫 시집을 퇴직 후에야 발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지상에 발표한 50여편과 발표하지 않은 상태로 쟁여놓은 여남은 시편들을 손질해(5쪽)' 시집으로 묶었다.
고 김춘수 시인은 하연승 시인의 첫 시집 <이슬의 탄생> 서문에서 '이만한 자질을 가진 시인이 왜 들나지 않고 외롭게 묻혀 있어야 하는가'라고 개탄했다고 한다. 왜 외롭게 묻혀 있었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하연승 시인은 이렇게 답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긴 세월을 한결같이 시를 보듬어 품을 수가 없었다. 직업이라는 무게함수가 그랬고 나의 시적 자질 또한 그랬다. 그래서 늘 시의 변죽을 맴도는 그런 형국으로 여기까지 떠 흘러온 것이다. 그러나 시를 향한 물빛 같은 먼 그리움은 잊지 못하면서…'
지나친 겸양이다. '나의 시는 매양 우직할 뿐만 아니라 상황에 대한 눈치가 어둡다. 그래서 나의 시적 면모가 미워지기까지 한다'는 말도 너무한 겸손이다. 시인 자신은 '상황에 대한 눈치가 어둡다'고 했는데, 만약 ´상황에 대한 눈치´가 ´시적 재기발랄함´이라면 시인의 자평은 잘못 된 것이다.
'여름의 한 토막이 재글재글 끓고 있다(´어느 백화점 앞의 대낮´ 중)'거나, '그것이 색깔 없이도 색깔을 보는 나비의 생태학일 테다(´나비의 생태학´ 중)' 등의 표현은 ´상황에 대한 눈치´로 넘쳐나고 있다. 물론, 이 때의 재기발랄함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사물을 파악하는 웅숭깊은 눈길이 단단한 동아줄이 되어 제 스스로 나풀거리려는 ´재기발랄함´을 동여매고 있기 때문이다. 130쪽. 8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