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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 김상옥6-경남일보
작성자 munhak
댓글 0건 조회 4,501회 작성일 2007-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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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부´의 시인 초정 김상옥(6)



2007-08-13 09:30:00
 광복이 된 후 초정과 윤이상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던 남쪽으로 내려왔다. 윤이상은 특유의 재능으로 부산사범학교 교사가 되었으나 초정은 부산, 마산, 진주 등지에서 그림도 그려서 팔고 길가에 앉아 도장도 새겨서 팔고 '도적질 말고는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할 정도로 여러 일을 하면서 떠돌았다.

 이 무렵 초정이 그린 그림은 아마 수천장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확실한 밥벌이는 역시 도장 파는 일이었다. 도장을 새겨 밥벌이를 해온 탓에 초정은 안경알을 깎아 생계를 유지했던 철학자 스피노자를 좋아했다. 세공업이라는 점에서 동업자 개념이 있었던 것일까?

 초정이 온갖 일을 다하면서 떠돌던 시절도 새로운 직업을 가지면서 끝이 났다. 새로운 직업이란 교사를 말한다. 교사 노릇이지만 자격증이 없었으므로 ´영원한 강사´의 출발이었던 셈이다. 그는 삼천포중학교와 삼천포여자고등학교 에서 그 일을 시작했다. 이 무렵 삼천포중학교에서 가르친 제자 중에 시인 박재삼이 있었다. 워낙 가난하여 제때에 학교에 다니지 못한 박재삼을 그는 유독 아꼈다.

 초정이 일단 백묵을 쥐고 교단에 서자 인기가 아주 좋았다. 정식 교원은 아니었지만 초정은 어느 학교에 가나 대접을 받았다. 사방에서 초청이 왔다. 통영여자중고등학교, 통영중학교, 통영수산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 가는 곳마다 그는 그 학교의 교가 가사를 쓰고 대개 윤이상이 곡을 붙였다. 그 중 삼천포여자고등학교 교가는 지금도 옛날 그대로 불려지고 있다.
 
 와룡도 가얏나라 고운 그 산천
 철마다 이 고장에 짜 느린 비단
 육신보다 영혼을 곱게 가꾸는
 순결한 그 마음씨 향그로와라
 춘추로 고운 계절 바꿔 드나니
 불러라 삼천포여고 꽃다운 동산
 아 아 우리들 거듭 난 모교의 이름
 
 이때 문학에 대한 열정도 정점에 올라가 있었다. 초정은 '해방 직후에 삼천포에 ´삼천포 문화 동지회´를 만들었지요. 좌익의 ´동무´라는 호칭에 반발하여 굳이 ´동지회´라는 용어를 썼어요. 그 무렵 좌익에 반발하고도 살아 남은 사람은 아마 흔치 않았을 겁니다. 그 무렵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시낭송회니 뭐니 문학행사가 열릴 정도로 일제때 억압당했던 갈증이 용출되고 있었어요. 나를 비롯하여 유치환, 전혁림, 윤이상, 허창언, 김용기, 탁형수, 김춘수 등이 주요 멤버들이었지요.'하고 술회한 바 있다.

 초정은 교사로 일하면서도 그림을 계속 그리고 전시회도 열었다. 마산에서 전시회를 열자 마산고등학교 이상철 교장이 전시회를 와 보고 ´함께 일하자´고 권유해 왔다.그래 마산고교 강사가 되었다. 이 학교에서 2년간 근무하던 어느날 오후, 초정은 몹시 피로했다. 의자에 앉아서 가르치려니 뒤에 앉은 학생들 얼굴이 보이지 않고,서서 가르치자니 피곤해 쓰러질 지경이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교탁 위에 올라 앉아 가르치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창문 너머로 교장이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는 것 아닌가.

 초정은 교장이 하는 몇 마디 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는 그 다음날 사표를 내던졌다.다시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그림을 그려 파는 고달픈 나날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한때 삼천포중학교에서 같이 교편을 잡다가 퇴직 후 부산에서 큰 사업을 하고 있던 박기태의 도움으로 서울 올라가 출판사를 차릴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상경한 첫날 여관에서 돈을 몽땅 잃어버리고 하는 수 없이 비탄에 잠긴 채 부산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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