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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봉암갯벌과 좀도요
작성자 정목일
댓글 0건 조회 3,947회 작성일 200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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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 봉암갯벌과 좀도요


                                                    정 목 일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봉암갯벌을 지나 창원과 마산을 오간다.


 창원과 마산은 이웃이라기 보다 붙어있는 도시이다. 행정구역만 나눠져 있을 뿐이지, 한 생활문화권을 갖고 있다. 창원의 남천은 마산만으로 흘러드는데, 마산 봉암지역 해변에 갯벌을 이루고 있다. 물이 썩어 악취를 풍기지만 도요새떼들이 몰려들어 먹이를 찾고 있는 것을 본다. 


 「마산.창원환경연합」이란 단체에서 봉암갯벌에서 마산만살리기를 기원하는 ‘매향제’를 올린 적이 있다. ‘매향(埋香)’은 향나무를 강이나 바닷가에 묻어 내세에 복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향나무를 땅에 묻어 1천년이 지나면, 심오한 향기를 갖게 되며 이를 ‘침향(沈香)’이라 한다. 불과 백년 미만의 삶을 사는 인간에게 천년이란 `영원´을 말한다. 향을 묻어 영원의 세계를 수용하려는 의식을 보여준다. 불경에 ‘향 싼 종이에선 향기가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선 썩은 냄새가 난다’는 말이 있다. 환경이 삶을 지배하는 요소가 된다는 뜻이다. 천년을 기다려 침향을 얻으려는 매향제는 민중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현실적 위기감을 바탕으로 한 순수의식의 한 표출이며 기원의 형태일 것이다.


 ‘마산만을 살리자’는 강한 염원에서 발원한 것이지만, 생활오수와 공장의 폐수로 오염돼 ‘사해(死海)’로 선고받은 바다를 청정의 바다로 되돌려 놓자는 간절한 염원의 표현이다. 봉암갯벌이 오염되지 않아야 매향이 천년이 지나면 침향이 될 것이다.


 봉암갯벌은 죽음의 바다에 있기에 생명력을 잃을 처지에 놓인 갯벌이다. 이 갯벌을 청정 갯벌로 만들려면 먼저 마산만을 살리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환경단체에서 매향제를 올리며 마산만을 살리자는 행사를 하는 시각에, 창원 남천에서 독극물인 크롬성분이 함유된 폐수가 다량으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처지라면 썩은 바다 갯벌에 향나무를 묻어두었다 해도 향기는커녕 썩은 냄새가 날 것이 분명하다.


 옛날에는 우물을 신성시하였고, 주변에 향나무를 심었다. 향나무의 뿌리가 뻗어 우물물을 향기롭게 하고, 구충기능도 해주어 물을 정화시키는 효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향나무가 있는 우물물을 길어다가 아기를 목욕시키고 산모(産母)에게 미역국을 끓여 주었다. 아기의 심신과 일생이 맑고 향기롭기를 바라고 산모에게도 건강하기를 염원한 배려였다.


 봉암갯벌의 도요새떼들을 보면서 썩은 갯벌에서 먹이를 구하여도 생명이 온전할 것인가, 독극물에 오염돼 죽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그렇지 않으면 도요새가 오염물에도 면역이 된 것인지, 또 봉암갯벌의 생태환경이 우려하는 것만큼 심각하지 않은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봉암갯벌의 도요새가 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죽은 바다의 갯벌에서 먹이를 구하다가 낭패를 보면 어쩌겠느냐는 생각이 불쑥 들곤 했다.


  우연한 자리에서 매향제를 열었던 주역의 한 사람인 환경운동가 L씨를 만나 궁금했던 봉암갯벌과 도요새에 대해 물어보았다. L씨는 봉암갯벌에 날아오는 새는 ‘좀도요’라 했다. 도요새는 물가, 습지, 하구, 해안 등지에 범세계적으로 분포해 사는 철새로 몸길이 12.5~ 61㎝의 소형에서 중형까지의 약 85여종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36종이 알려져 있어 도요새의 종류를 식별하기는 전문가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좀도요’는 몸길이 15㎝ 정도이다. 여름에는 등 면이 밤색을 띤 갈색으로 얼룩져 있다. 멱과 가슴 옆 면에 밤색 세로무늬가 있으며 아랫 면은 백색이다.


 L씨 덕분으로 좀도요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봉암갯벌에 먹이를 구하고 있는 불쌍한 새로만 여기던 인식이 바꿔졌다. 나는 좀도요의 비상을 생각하면서 몸을 떨었다.


 좀도요는 병아리 반만한 크기에 무게가 35%에 불과하지만 한 번 비상하기 시작하면 수천만 ㎞ 상공을 날아 1만 2천㎞의 거리를 4박5일동안 1초도 쉬지 않고 싱가포르까지 간다. 비행기로도 꼬박 7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좀도요는 자지도 먹지도 않고 밤이면 어두운 밤하늘을 날아야 한다. 피로하다고 해서 쉴 수도 없다. 땅에 내려 쉬어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들지 모르지만, 한 번 땅에 내리면 다시 비상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기에 생명을 건 모험의 날개짓을 쉴 새 없이 할 수밖에 없다. 목적지에 도착하여야만 피로에 지친 날개를 쉴 수 있다. 사람이 쉬지 않고 얼마나 걸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작은 좀도요의 비상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망망한 허공을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며칠 몇 밤을 날아야 하는 좀도요-.


 먼 거리를 날아가기 위해선 갯벌에서 충분히 먹이를 줏어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적도까지 날아가는데 힘이 부치면 죽음을 자초해야 하기 때문이다. 좀도요에겐 비상하지 못하면 꿈 꿀 권리도 삶을 유지할 수도 없다. 좀도요의 일생은 먹이를 찾아 비상하여 이동하는 일에 다 바쳐진다. 싱가포르에서 먹이를 구하다가 다시 호주에 가서 15일간쯤 지낸 다음, 우리나라에 와서 휴식을 취하고 시베리아로 날아간다. 일 년에 지구 절반쯤의 거리를 나르며 살아가는 좀도요다.


 칠흑 같은 어둠, 뼈에 스미는 고독,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오로지 자신이 가야할 갯벌을 찾아 우리나라 마산 봉암갯벌에 온 것이다. 좀도요떼들은 무리 지어 수천만 미터 상공에서 마산만에 내릴 것인가, 순천만에 내릴 것인가를 판단하여 한 곳에 내리게 된다.


 마산 봉암갯벌에 먹이를 찾는 좀도요는 참으로 먼 곳으로부터 생명을 걸고 날아온 진객이다. 이 반가운 진객에게 악취가 나는 썩은 먹이를 먹게 하다가 급기야는 오염으로 병들어 죽게 될지 그것이 큰 걱정이다.


 썩어가는 봉암갯벌에 향나무를 묻어 침향을 얻길 바라는 마음은 다시금 청정의 바다를 살려놓자는 뜻이다. 좀도요가 마음껏 먹이를 찾고 비상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나는 봉암 갯벌을 지나치면서 갯벌에 묻어놓은 향나무에게 미안하다. 좀도요에겐 너무 미안하다.


 『물이 이런 빛이어선 안되는데....』


 『갯벌에서 제 향기가 나야할텐데...』  


 갯벌에 주둥이를 쳐박고 먹이를 찾다가 “후릿 후릿” 소리를 내는 좀도요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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