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화의 기저에는 반드시 문학이 존재한다. 영화나 연극은 시나리오나 희곡대본이 있어야 하고 시나리오나 희곡대본은 문학에 속한다. 음악도 가사를 붙이기 위해서는 함축된 문학의 언어를 빌려와야 하고 무용 역시 문학의 범주에 드는 스토리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판소리나 타령, 마당놀이, 수많은 탈춤들 역시 이야기의 흐름이라는 문학의 인프라 위에서 가능해진다. 적어도 20세기까지 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문화의 선두주자였으며 시대적 경향이나 모럴을 먼저 파악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선각자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21세기 들면서 다양한 매스미디어의 발달과 더불어 자본에 기댄 디지털 영상문화가 넘쳐나고, 그들이 문화를 대중화하는데 첨병 역할을 하면서 한때 문화의 선두주자 역할을 했던 문학은 문화의 한 분야로 위축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제 대중화 된 문화는 문화 자체를 오락성 문화로 내몰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문학은 그 딱딱함과 엄숙함 그리고 도도함 때문에 비주얼한 문화에 길들여진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문화적 환경 속에서도 문학은 아직도 교양 문화의 윗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제 문학은 도도함과 엄숙함을 벗고 대중에게 스스로 다가가지 않으면 고립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없지 않다. 이 같은 현실론에 힘입어 좀 더 유연하게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작업이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경남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모임인 경남문인협회 회원들은 좀 더 대중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대중들이 친근하게 문학을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획을 해왔다. 해마다 시 예술제를 열어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학 마당을 만들고, 계간 <경남문학 designtimesp=23192>을 연 4회 발간하여 배포하며, 백일장과 시 낭송을 통해 좀 더 대중들과 친숙해지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2007년부터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시집’을 발간하고 낭송 CD와 테이프도 제작하여 무료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점자시집 관련 사업은 경남의 시인들이 손끝으로 세상을 읽는 ‘점자시집’과 귀로 듣는 낭송시집을 묶어내어 각계의 찬사를 받았으며, 여러 언론사에서도 문자를 읽기 어려운 시각 장애인들이 쉽게 문학을 접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며 높이 평가한 바 있다. 또한 간혹 점자로 만들어진 시집이 있기는 하지만, 오로지 시각장애인을 위하여 시인들이 작업하고 점자시집을 발간하는 것은 경남문인협회가 처음이라며 이 사업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것에 기대를 표했다.
그러나 예산이 빈약하여 회원들이 자비를 추렴, 모자라는 예산에 보탰지만 제작비가 많이 드는 점자시집을 겨우 180부 발간하여 전국 시각장애인 도서관에 몇 권씩 배부하는 데 그쳐야 했던 아쉬움도 있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경남지역 기업 메세나에 어렵게 찬조를 부탁한 결과, 뜻밖에도 상당히 긍정적인 답을 해주어 경남문인협회 회원들이 고무된 상태다. 이미 메세나를 통한 계간 <경남문학 designtimesp=23195>정기구독 수가 150부가 넘었다.
세계 모든 나라가 글로벌 경제권을 형성하면서 문화는 수출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를 먼저 내다 팔아라.” 국가적 수출전략에서 이처럼 문화는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미국의 청바지와 통기타를 내세운 문화전략은 전 세계에 햄버거와 프라이드치킨과 콜라 시장을 개척했고 잇따라 가전제품과 자동차 등 묵직한 상품들이 세계시장을 선점했다. 이후 문화전략은 각국에서 수출 전략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가 된 것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불고 있는 ‘한류’ 바람은 바로 기업의 대외 수출전략에 반영된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어느 날 한국제품을 사겠다고 지갑을 여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는 글로벌 무한 경쟁체제에서 국가 경쟁력의 바로미터가 된다. 기업이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문화가 기업의 활동에 가교 역할을 하는 공생관계는 아주 바람직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기업메세나 활동은 문화인의 한 사람으로 박수를 보낼 만하다. 물론 메세나의 문화 후원 사업이 그동안 공연 예술쪽에 치우쳐 있다는 감이 없지 않았지만 이제 문학쪽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공연예술은 당장의 시각적 효과가 크다는 장점이 있지만, 창조적이고 새로운 공연을 위해서는 문학적 인프라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경남 메세나의 지원에 힘입어 경남의 문학이 타 장르와의 교류를 강화하고 시민 대중들과의 호흡을 더욱 가깝게 할 수 있다면 경남지역 문화를 업그레이드하는 멋진 계기가 될 것이다.
김 미 숙(시인-경남문인협회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