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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작성자 경남문학관
댓글 0건 조회 2,295회 작성일 200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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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새 - 정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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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읍내에서부터 꽁무니에 뽀얀 구름을 달고 왔다. 정임이네 굴뚝 연기처럼 뭉글 피어오르던 흙먼지가 가라앉자 한 무리의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버스에서 내렸다.

멀리서부터 버스를 멀거니 바라보던 산이는 무엇엔가 놀란 듯 후다닥, 지게를 진 채 아카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바보 산이 오빠야. 뭐가 그리 창피해서 또 숨나?”

산이는 몸을 움찔거렸다. 정임이의 질타 섞인 목소리가 흙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것 같아서였다.

정임이는 중학에 진학하며 개구쟁이 때를 쏙 벗었다.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옷깃의 교복을 입으며 하는 짓도 어른스런 빳빳한 행동을 하였다. 이런 정임이를 대하면 산이는 눈 둘 곳을 몰라 마냥 허둥대었다. 언젠간 정임이와 친구들을 멀리서 보고는 슬그머니 논둑으로 내려섰는데, 이를 눈치챈 정임으로부터 호된 나무람을 받기도 했었다.

“와. 학교 안 간 게 무신 큰 죄가? 와 숨노?”

정임이 앞에선 마음이 자꾸만 작아지는 산이었다.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며 가슴까지 마구 떨려 아무런 대꾸도 산이는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산이는 정임이를 싫어하진 않았다. 지금도 마음은 그때와 같아서 재잘대며 마을로 드는 정임이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산이는 아카시 나무 곁을 떠나지 못했다.

다락 논에는 두렁을 타고 질경이 꽃들이 하얗게 널려 있었다. 눈앞에 놓고 재어보면 한 뼘쯤밖엔 안 되어 보이는 작은 논마다엔, 어제 내린 비로 고인 물이 5월의 푸른 나뭇잎들을 끌어당기며 찰랑이고 있었다. 산이의 고무신 발에 채인 질경이 꽃들이 눈처럼 뽀얗게 날아가다 찰랑이는 논물 위에 떨어졌다. 산이는 지게를 벗어 등받이를 돌려놓고 몸을 눕혔다. 저 멀리 산을 여러 개 넘어 커다란 푸른 도화지처럼 펼쳐진 바다가 산이의 눈에 들어왔다.

“에이. 옥수수라도 가져올 걸.” 바다를 바라보던 산이는 갑자기 배고픔을 느꼈다.

“논에 갈 때 집에 들르렴.” 논일을 부탁하러 집을 찾아온 정임이네 엄마는 말했었다.

마음은 가고팠으나 산이는 정임이네 집엘 못 들렀다. 산이보다 나이는 두 살 어리지만 중학생이 되자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정임이이었다. 혹시나 정임이가 있을까봐 산이는 정임이네 집을 빙 둘러 논으로 왔었다. 그래도 정임이를 생각하면 산이의 기분은 마냥 좋아졌다. 산이는 괜스런 상상에 빙긋이 혼자 웃으며 움켜진 풀 밑동에 날이 선 낫을 들이댔다. 휙휙, 낫을 놀리자 싹둑싹둑 잘린 풀들이 너풀대며 넘어져갔다.

“참이요 참이 왔다요” 두 배미 두렁의 마지막 풀 깎기에 정신없는 산이의 귀에 정임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들 토끼처럼 기운차게 풀끝을 걷어차며 아래배미 구부러진 논둑길을 정임이는 올라오고 있었다. 옷깃이 하얗게 눈부신 교복을 그대로 입고 있는 정임이의 머리엔 작은 함지가 얹혀 있었다. 사람이 없는 곳이어서 산이는 부끄럼을 안 느꼈다. 오히려 용감해져서 낫을 집어던지고 반가움도 역력히 한걸음에 정임이에게로 달려갔다.

“금방 갈 텐데 뭐하러 와.” 말과는 달리 기다렸다는 듯 산이는 정임이의 머리에서 함지를 받아 내렸다. 정임이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똑, 산이의 손등으로 흘렀다. 따끔거리듯 이상한 기운이 산이의 가슴 쪽으로 쏴아 하며 몰려왔다. 산이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찐 옥수수와 삶은 감자가 그득히 담긴 함지박 안에 못 보던 노란 양은 주전자가 놓여있었다. 감색치마를 끌어당기며 정임이는 조롱바가지 하나를 산이에게 건네고 양은 주전자를 치켜들었다.

“오빠야, 술이야, 남자들은 술심으로 일 한다며? 엄마 몰래 가져왔다. 헤헤.” 얼떨결에 받아들고 있는 산이의 조롱바가지에 정임이는 술을 따랐다.

“정임아, 무슨 술이야? 나는 아직 어린데….”

촌 일을 하며 가끔씩 두렁 밑에 숨어서 마시기는 했지만, 누가 볼까 겁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여서 산이의 손끝이 파르르 떨려왔다. 이마에 쇠똥도 안 벗겨진 놈이 술부터 마신다며 정임이 엄마 아시면 경을 칠 일이었다. 주전자를 든 정임이의 손끝도 산이를 따라 파르르 떨었다.

“싫으면 그만둬, 내가 먹을 테니” 눈을 흘기며 산이를 바라보던 정임이는 술이 든 바가지를 순식간에 빼앗아 숨도 안 쉬고 한 번에 마셔버렸다. 그리고 트림도 없이 입가에 묻은 술 찌기를 하얀 교복 소매로 ‘쓰윽’ 문지르고는 술 주전자를 다시 쳐들었다.

“이리 내, 여자가 못하는 짓이 없어.” 그때서야 사태를 파악한 산이가 얼른 술 주전자를 빼앗았다. 이번엔 제 손으로 술을 따라서 정임이 모양 단숨에 마셔 버렸다.

얼큰한 농주의 취기는 산이보다 정임이의 몸에서 더 빠르게 일어났다. 감자 한 조각을 떼어 안주처럼 씹던 정임이가 숨을 쌕쌕 몰아쉬더니 나무둥치 쪽으로 엉덩이를 밀치며 가서 등을 기댔다.

“오빠야. 오빠야는 말이다, 죽으면 뭐가 되고 싶노?”

파란 도화지 같은 하늘에 흰색 물감을 뿌려가며 달려가는 쌕쌕이를 멀거니 바라보던 정임이가 느닷없이 고개를 돌려 산이를 쏘아 보며 말했다.

“죽으면? 음. 나무야 나무. 오빠는 죽으면 저기 너도밤나무보다 더 큰 나무가 될 거야.” 마지막 남은 옥수수를 집으며 정임이를 바라보던 산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쉽게 대답을 했다.

“정임이는? 정임이는 죽으면 뭐가 되려나?” 들판에 쌓인 눈을 피해 정임이네 굴뚝 곁에서 한겨울을 나던 작은 새가 산이의 눈에 아른거려 왔다. 정임이는 그 굴뚝새에게 처마 밑에 걸린 씨앗인 조 이삭을 뜯어 주다 제 엄마에게 혼이 나기도 했었다.

“착각하지 마, 오빠야. 콩새나 굴뚝새 말고 나는 엄청 커다란 참수리매가 될 끼다.” 산이의 얼굴이 술 때문은 아닌 더 붉은 홍당무가 되어 갔다. 정임이에게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무시무시한 부리가 달린 매가 되어 오빠의 나무에 앉는 새들을 모조리 물어버릴 거야. 우왕, 하고 이렇게, 오빠야 나무에는 정임이 새 한 마리로 족하거든? 헤헤.” 정임이가 웃으며 드러낸 하얀 치아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산이에겐 느껴졌다.

“무슨 매가 강아지처럼‘우왕’ 하고 우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산이는 몸을 오싹거렸다. 정임이의 농에는 가시가 늘 박혀 있었다. 산이는 슬며시 일어나 낫을 들고 마지막 남은 두렁의 풀을 베러 내려갔다.

“마음이 울적하고 외로울 때면 날 저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주머니 속에 넣어온 하모니카를 분다.” 산이의 뒷모습을 흘끔거리던 정임이는 노래를 부르며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정임이는 남들이 모르는 노래를 많이도 알고 있었다. 그러며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불렀다. 한몫에 다 부르지 않고 한 소절만 부르고는 남들이 잊어버릴 만한 시간에 다시금 다음 소절을 부르는 괴상한 취미를 정임이는 가지고 있었다.

“붕 파파 붕 파파 하모니카 불면 수평선 저 멀리 줄지어 서 있는, 오징어잡이 배들은 등불을 켜고 철썩철썩 파도는 노래를 한다.” 한 배미 두렁의 풀을 다 깎아 갈 즈음에 정임이의 다음 노래가 들려왔다. 보나마나 잠결에 저도 몰래 나온 노래일 거라고 산이는 생각했다.

“휘, 휘,” 노래 끝에 딸려 나오는 정임이의 휘파람 소리가 논두렁 아래로 뻗친 산이의 바짓가랑이를 내리감으며 야릇한 기운으로 스며들어 왔다.

너도밤나무 긴 그림자가 동리 모두를 뒤덮을 때쯤에야 산이의 논두렁 깎기는 끝이 났다. 바지게에 소먹이용 꼴을 한 짐 모아 지고 오니 그때까지 정임이는 한밤중이었다. 나무처럼 두 팔을 치켜들고 잠을 자는 정임이의 교복 상의가 흐트러져 있었다. 흔들어 깨우려다 왜인지 산이는 눈이 시려서 손을 다시 거두어들였다.

“정임아, 이제 그만 가자. 응?” 겨우 용기 내어 한 목소리도 모기소리만큼이나 작게 나왔다. “아하, 오빠야, 내가 술이 취했었나 봐. 헤헤.” 께끄름하게 눈을 뜨며 기지개를 켜는 정임이의 몸에서는 밋밋한 나뭇잎 냄새가 풍겨 나왔다. 초록의 풀 내보다 더 나은 것 같아 산이는 눈을 감고 저도 몰래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뭐 해? 집에 가자며?”

“응? 응. 그래 집에 가자.” 딴짓 하다 들킨 것처럼 얼굴이 빨개진 산이는 얼른 지게에 얹으려 함지를 집어 들었다

“아니야. 이건 내가 가져 갈 거야.” 정임이는 일어나며 잽싸게 함지를 빼앗아 제 머리에 이었다. 제 하고자 하는 일엔 거침없이 덤비는 정임이었다. 그런 정임이의 고집을 산이는 언제나 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머리에 똬리를 받쳐주고 촐랑대며 앞서가는 정임이의 뒤를 산이는 따랐다. 까불거리며 걷는 폼이 수상쩍다고 산이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임이는 서너 발짝을 떼다 말고 무릎을 꺾으며 산이의 걱정대로 함지를 논두렁에 내동댕이쳤다. 놀란 산이가 지게를 벗어 던지고 달려들었지만 높다란 비탈길을 멋대로 굴러간 정임이는 비명도 없이 수렁배미에 그래도 다리부터 쑤욱, 내리박혔다. 산이는 정임이의 가슴을 끌어안으며 허리까지 빠진 정임이를 끄집어 올렸다. 그러나 기다린 것은 정임이의 울음보였다. 그때서야 정임이는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정작 울고 싶은 사람은 산이었다. 정임이의 몸 어느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으니 저래서야 동네로 바로 들어 갈 수는 없었다. 그러잖아도 말 많은 친구들의 입을 타면 별별 소문이 날개를 달 것은 불 보듯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산이는 우는 정임이를 달래며 얕게 고인 논물에 얼굴과 팔다리를 씻어 주었다. 하지만 하얀 교복은 어림도 없었다. 넘어진 지게를 바로 세우고 반쯤 흘려진 풀을 거머쥐던 산이의 머릿속에 번개 같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그래, 꼴 대신 정임이를 싣는 거야.” 산이는 정임이를 바지게 안에 앉히고 그 위에 풀을 뒤집어 씌웠다. 발채가 봉긋 솟긴 해도 겉으론 틀림없는 꼴짐이었다.

“이젠 되었다. 하하. 정임아 어때? 오늘은 네가 꼴이다 꼴, 알았지?” 우습기는 정임이도 마찬가지였다. 폴폴 솟는 풀 내에 울던 울음을 뚝 그치고 이내 장난기 어린 실 웃음을 눈에 지었다. 그러며 정임이는 산이의 지게 위에서 연신 꼼지락거렸다.

“꼴이 가만 안 있고 왜 꼬물거려?” 산이가 핀잔을 주자 정임이는 풀 속에서 오히려 머리를 쑥 내밀고 말을 받았다.

“요새 꼴은 말도 한다 아이가. 그뿐인 감? 노래도 썩 하는 걸? 붕 파파 붕 파파 하모니카 불면, 저녁별 늘어가는 하늘 한 귀퉁이, 달님은 삐죽이 얼굴 내밀고, 끼룩 끼룩 갈매기는 노래를 한다.”

아까 다 못 부른 노래의 다음 소절이지 싶었다. 산이가 말릴 사이도 없이 정임이는 속사포처럼 노래를 뱉어 냈다. 산이는 더럭 겁이 났다. 누가 알면 큰일 날 일이었다.

“정임아, 너 누구 죽이려고 그래?” 다급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근처에 사람 하나 없음을 알고 나서야 휴, 하고 안도의 숨을 산이는 내쉬었다.

“와, 오빠야. 겁나나?”

“정임아, 동네 다 왔다. 오빠야 좀 살려 주라 응?”

“무신 사내가 간이 그리 작노? 그래가지고 어찌 큰일을 하겠나? 에그 쯧.”

연신 정임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산이의 빨간 홍당무 얼굴을 보며 “까르르.” 자지러지게 웃던 정임이는 다시 머리에 풀을 뒤집어썼다. 그러다 어느 사이 신작로까지 정임이를 짊어지고 산이는 왔다. 이제 길만 건너면 동네이었다. 정임이와 산이의 집은 동네를 한참 돌아가야 있었다.

“끼룩, 끼룩, 산이 오빠야, 갈매기가 술 취했나 보다. 헤헤헤 .” 웃어젖히면서도 풀을 털어내지 않는 정임이로 인해 산이의 마음은 조금은 안정되었지만 다리는 이상하게도 후들거려 왔다.

산이는 신작로 앞에서 멈추어 섰다. 꼴지게를 타고 흐르던 정임이의 웃음소리도 따라서 섰다.

“부웅” 꽁무니에 뽀얀 흙먼지를 달고 온 버스는 동네 앞에서 서지 않고 산모롱이를 바로 돌아갔다. 차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두 눈을 꼭 감고 서 있는 산이를 따라 등에 진 풀 더미도 꼼짝을 안 했다. 이번엔 산이가 먼저 픽 웃음을 흘리며 길을 건넜다.

동네 이름이 적힌 커다란 돌 곁을 지나는데 산이의 꼴짐이 다시 들썩거렸다. 심하게 움직이는 지게의 중심을 잡으려 산이는 또 설 수밖에 없었다. 뒷산 둔덕 위에서 해는 발갛게 익은 참숯이 되어 산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임이는 해지는 노을을 보길 참 좋아했다. 산이가 이사 오던 날도 정임이는 이삿짐을 들고 자기 집 마당을 가로질러 다니는 산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댓돌 위에 쪼그려 앉아 지금처럼 벌건 저녁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의 정임이는 8살이었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고 어른처럼 생각하며 산이는 또 빙그레 웃었다.

“동네 사람들아.” 산이가 신작로를 다 건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정임이는 산이의 바지게 위에서 갑자기 윗몸을 일으켰다. 그러며 놀라는 산이는 아랑곳없이 두 손을 모아 깔때기를 만들어 동네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얼마나 소리를 크게 질렀던지 정임이 저도 숨이 차서 컥컥 거렸다.

“동네 사람들아, 이쁜 정임이가 준철이 오빠야 하고 연애 한다아.”

감나무 잎에 앉아 있던 딱새 한 마리가 정임이의 고함에 놀라 파드득 대며 먼 하늘로 날아갔다. 그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던 곰 바위 집 아저씨가 물끄러미 산이와 정임이를 바라보았다. 해는 그제야 둔덕을 넘어 갔다.

“붕 파파 붕 파파 하모니카 불면, 돌아앉은 등 뒤로 어둠에 밀린, 밤이슬 하나둘 꽃잎 속에 들고, 어여쁜 정임이는 노래를 한다.”

연이은 정임이의 노랫소리가 붉은 구름에 싸인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르고 있다.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심사평


평온한 서정성 무리 없이 펼쳐





삶이 곤고해지면 우리의 영혼은 순연해지고 싶은 열망을 지닌다. 2009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응모된 편수는 예년에 비해 줄었다. 하지만 작품 평균 수준은 여느 해보다 고르고 월등했다.

동화는 다른 장르보다 훨씬 까다롭다. 동화가 지녀야 할 것은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드높게 승화시켜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공유하게 하는 신선한 동심을 보듬고 사는 이야기여야 한다. 물론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슬기와 지혜를 은연중 익히는 일이다.

오랜 시간 숙독하고 윤독한 끝에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가훈은 셀프(김혜란)’, ‘하나새가 준 선물(김현경)’, ‘나무와 새(정이식)’ 3편이었다.

김혜란씨의 ‘가훈은 셀프’는 동화가 지니는 재미와 호기심을 한껏 부풀려 단숨에 읽히는 장점을 지녔을 뿐 아니라 주인공 ‘아이’와 김훈장이라는 캐릭터는 잘 살렸다. 그러나 동화가 품어야 할 서정성을 놓치고 만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고, 김현경씨의 ‘하나새가 준 선물’은 새와 친화해 가는 여정이 순수하고 호감이 간다. 창고에서 새가 알을 낳고 윤주와 지니는 애정은 아름다우나 상징성이 모자라 적이 망설이게 했다. 당선작 정이식씨는 몇 해를 두고 응모해 온 숨은 작가다. 그의 ‘나무와 새’는 제목이 시사하듯 평온하고 잔잔한 서정성을 무리없이 펼쳤다. 그 서정성은 작가적 기량을 말해주는 것 같지만 진부한 내용이다. 심사위원은 거듭 숙의하고 논의했다. 세 분 중 어느 분에게 당선의 영예를 드려도 하자는 없으나, 신춘문예의 몫은 새로움 못지않게 내일에도 우뚝해야 하는 역량있는 작가를 뽑는 데 있다. 정이식씨의 ‘나무와 새’는 새롭지는 않으나 좋은 동화를 생산할 수 있는 느긋함과 여유를 발견할 수 있어 당선작으로 뽑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심사위원 조대현·임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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