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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7) 수필가 정목일씨 - 경남신문
작성자 경남문학관
댓글 0건 조회 2,273회 작성일 200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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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7)- 수필가 정목일씨


내 글은 내 삶 비추는 거울, 매일 나를 가다듬으며 글 쓰죠

1975년 월간문학 제1회 수필 신인공모 당선 ‘공식 수필가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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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달빛 속 은은한 피리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바람, 풀꽃, 목향, 촛불, 백자가 가락을 타고 덩실거린다.

종이 위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던 활자들이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온다.

‘서정수필가’ 정목일의 글을 만나는 순간이다.

촉촉한 빗방울이 반가웠던 봄날 오후, 찻잔에서 꽃망울을 터트린 국화를 사이에 두고 정목일씨와 마주 앉았다.

“아름다운 글을 위해 매일매일 영혼을 가다듬는다”는 그. 국화차를 따르는 손길이 유난히 정성스럽다.

▲공식 수필가 1호

‘공식 수필가 1호’는 수필가 정목일을 30여년간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종합문예지 수필 부문 첫 데뷔자인 그를 부르는 이 수식어는 그에게 부담인 동시에 기회였다.

사건의 발단은 ‘호기심’이었다. 1975년, 소설가를 꿈꾸는 문학청년이었던 그는 구독하고 있던 ‘월간문학’에서 ‘제1회 수필부문 신인작가 모집’ 공모를 보게 됐다. ‘최초’라는 매력에 동요된 그는 제법 잘 쓴 산문을 골라 응모했고, 그 작품이 덜컥 당선됐다. 그렇게 갑작스레 수필계의 미래를 두 어깨에 짊어지게 된 청년. 당선은 됐지만 크게 기쁘지만은 않았다.

“저 스스로 수필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던 상태였고, 수필은 허약하고 진로도 막막한 장르였습니다. 당시 수필은 아웃사이드 문학장르였고, 비전문 문학장르라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그래서 수필의 길을 갈 것인지, 진로를 수정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번뇌와 방황이 있었지만, 첫 데뷔자라는 긍지와 부추김에 그는 결국 수필을 택했다. 그리고 30여 년이 흘렀다. ‘자족과 불만족을 함께 공유하며’ 수필의 길을 걸어온 그는 새로운 수필의 시대를 열었고, 한국 수필계를 대표하는 거목이 됐다. 올해 그는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직을 맡았다.

그는 자신의 수필을 모아낸 대표 선집 ‘침향’에서 그의 삶과 수필의 관계를 이렇게 풀어냈다.

“수필과 더불어 살아온 삶을 다행히 여긴다. 만약 수필이 없었더라면 내 삶은 얼마나 황량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 수필들은 내 삶과 인생에서 피운 꽃들이고, 무명의 풀꽃이라도 애정과 사색 속에서 피워낸 것이다.”

▲한국미(美)의 영혼을 좇아

정씨가 쓴 수필은 많다. 책으로 엮은 수필집만 10권이 넘고, 30년간 각종 문예지, 신문 등에 발표된 수필과 아직 그의 책상 서랍 안에 있는 미발표 수필까지 합치면 그 양은 어마어마하다. 그도 “그 수를 헤아려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수필이란 무릇 경험을 토대로 하는 글이기에, 그가 이야기하는 소재나 주제 또한 방대하다. 하지만 그의 수필을 꾸준히 읽은 독자라면, 그 글들이 한 가지 정신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문화의 정신과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손정란 시인은 ‘정목일 수필문학 연구(선우미디어)’를 통해 “정목일의 글은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담고 있으며, 옛 사람들의 생활에서 우러나온 산 철학에 중점을 두고 그들이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지혜롭고 밝은 마음을 중요시한다”고 평했다.

대부분 그의 작품은 한국의 공간미, 우리 소리, 한국의 여인상, 예스러운 멋 등 ‘한국인의 영혼과 서정,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있다.

금동반가사유상에서 한국인의 깊은 사유를 보고, 대금 산조에서 산과 하늘과 땅의 마음이 교감하는 신비를 체험하고, 침향으로 손 비비는 소리에서 1000년의 세월과 이마를 맞대는 식이다.

그가 이렇듯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골동품 수집가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부터 골동품과 함께 자라면서 그것들이 들려주는 전통과 역사, 그리고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그 경험은 그가 기자로 일할 때, 우리 문화에 대해 탐구하고 취재하는 원동력이 됐다.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 서정을 어떻게 현대적인 감각에 맞춰 되살릴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 일은 저한테 꼭 맞았고, 정말 신명나게 일했었죠. 당시 썼던 기사로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 99’란 책도 냈죠.”

그의 글이 달빛을 닮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인의 정서는 햇빛보다는 달빛 정서에 가까워요. 속까지 드러나는 환함보다는 문풍지를 통해 비춰지는 것처럼 은은한 아름다움이 더 어울리거든요. 미적인 기준도 외향적인 것보다는 내면적인 게 더 중요하지요. 저는 서양 것과는 다른, 우리 고유의 내적인 영혼과 서정성의 아름다움을 제 글을 통해 알리고 싶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김정호를 존경합니다. 서민 출신인 그는 짚신을 10켤레씩 메고서 삼천리 강토를 일일이 발로 직접 걸어다녔어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시장통의 사람 내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담아서 전국 지도를 만들었다는 게 너무 대단하지 않아요?”

수필도 작가가 직접 체험하고, 느끼고, 본 것을 다시 다듬어 쏟아내는 작업이기에, 그 또한 김정호처럼 발로 세상을 그리는 수필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수필은 삶이다

수필은 인생을 담은 그릇이다. 때문에 수필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주제와 소재는 ‘인생’이 된다. 그는 “늘 많은 경험을 하고, 깊은 사색을 통해 자신을 돌아본다”고 말했다.

특히 그가 수필을 위해 빼놓지 않는 일은 여행이다. 그는 한 달에 1~2번은 국내로, 일 년에 1번은 꼭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84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결코 돈이 많거나 시간이 남아서가 아닙니다. 새해를 맞으면 1순위로 ‘해외여행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는 “수필가에게 여행은 전쟁하러 나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충격을 받고 새로운 것을 만나야 쓰고 싶은 충동도 생긴다는 것.

“미지의 세계를 만나서 주머니 속 메모장이 달그락달그락거리는 기분이 너무 좋다”며 미소 짓는 그가 찾은 곳은 티베트, 이집트, 로마, 미국 등 30여 나라다. 그는 25년간의 여행기를 모아 ‘나의 해외 문학기행’, ‘실크로드’도 발간했다.

‘여행’이 수필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면, ‘자기성찰’은 좋은 수필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수필은 자신이 쓰고 자신이 주인공이므로 자신의 삶과 인생을 거울에 비춰 보이듯 드러냅니다. 인생의 경지가 수필적 경지가 되고, 좋은 수필 한 편은 좋은 인생과 인격을 발견하는 일이지요. 내가 쓰고자 하는 수필은 완벽한 문장이 아닙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기 때문이죠. 죽을 때까지 쓰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길 바랄 겁니다.”

그렇게 그는 매일매일 수필을 통해 성장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궁극의 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토기 항아리에 담긴 물, 풀꽃이 내 생각이며 나의 세계이다. 나의 수필은 산 속 달밤에 듣는 호젓한 피리소리였으면 한다. 피리소리는 달빛을 머금고 골짜기로 흘러 별들에게는 미처 못 닿고 풀벌레들의 촉각에나 닿아서 그들의 소리를 가다듬어 줄 수 있다면….’(풀꽃이 되어 中)

▲정목일 수필가는= 1945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1975년 ‘월간문학’ 1976년 ‘현대문학’지에 각각 최초로 수필로 등단했으며, 현대수필문학상, 수필문학대상을 수상했고, ‘모래밭에 쓴 수필’ ‘마음 고요’ 등 다수의 수필집을 발행했다. 경남신문 편집국장, 경남문인협회장, 경남문학관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문협수필분과 회장을 맡고 있다.

글=조고운기자 lucky@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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