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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문학인 신고송, 책으로 부활 <경남도민일보>
작성자 경남문학관
댓글 0건 조회 2,541회 작성일 2009-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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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문학인 신고송, 책으로 부활
일제 강점기 계급문학 선도하다 월북한 작가
마산 출신 극작가 김봉희 씨 <계급문학, 그 중심에 서서> 발간
newsdaybox_top.gif 2009년 10월 06일 (화) 김훤주 기자 btn_sendmail.gifpole@idomin.com newsdaybox_dn.gif
남과 북 모두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벌였는데도 남과 북 어느 한 쪽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는 받지 못하는 문학인들이 많다. 옛 경남 언양(지금은 울산) 출신인 신고송(1907~?)도 여기 끼인다.

신고송이 마산 출신 학자의 손을 거쳐 제 모습과 제 자리를 그나마 찾게 됐다. 극작가이기도 한 김봉희(40) 경남대학교 인문학부 강의전담교수가 <계급문학, 그 중심에 서서>를 내놓은 것이다.

김봉희씨는 이미 지난해 12월 18일 두 권짜리 <신고송 문학전집>을 펴냈다. 전집은 1600쪽 가량으로 김씨가 지난 98년부터 11년 동안 발굴·연구해 온 신고송의 여러 갈래 작품 111편을 담았다.

   
 
 
김씨가 낸 전집에는 신고송 희곡뿐 아니라 동시와 동화, 희곡 등에 더해 문학작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소개된 적이 없는 일기와 편지, 강연문 등까지 담겨 있다.

신고송은 아동문학가이자 극작가로 시인 서덕출과 함께 울산의 양대 문인으로 꼽히지만 남한에서는 거의 잊힌 인물이었다. 일제 강점기 계급문학의 선도 주자로 활동하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월북을 했기 때문이다.

<계급문학, 그 중심에 서서>에 덧붙여진 관형어는 '월북 연극인 신고송의 그늘진 삶과 문학을 찾아서'. 김씨는 신고송의 그늘진 삶과 문학을 네 시기로 나눠 살펴본다.

1925년 등단 전후부터 1930년까지가 1기,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유학 등을 통해 계급주의 문학가로 전향에 이르는 기간이 2기, 1945년 8월 광복에서 1946년 4월 월북까지가 3기, 그 뒤 1966년까지 북한 체제에서 활동한 시기가 4기다.

이런 시기 구분에 따라 김씨는 3~6장에서 제각각 '초기 동시에 나타난 민족 현실' '계급주의 문학의 정착 과정' '광복기 희곡문학을 통한 계급 실천' '재북(在北) 시기 희곡 문학과 사회주의 체제 구현'을 주제 삼아 다루고 있다.

앞선 1장과 2장에서는 '신고송의 삶과 문학관'을 개괄하는 글을 담았고, 마지막 7장에서는 신고송 문학을 연구하는 의의와 앞으로 남은 과제에 대한 전망을 녹였다.

김씨는, 신고송을 요약하자면, "월북 이전까지 우리 계급문학 운동의 중심에 서서 실천적으로 문학 활동을 전개한 역량 있는 작가"이며 "월북한 뒤에는 북한 연극의 기클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문학실천가로서 그의 모습이다." "창작 못지 않게 현장 비평과 이론 소개를 통해 창작과 이론의 접목에 노력했다. 특히 그의 희곡 창작 이론은 실제 공연에서 효과적인 무대 연출 양상까지 옮겨 놓고 있다."

김봉희씨의 이런 성과로 이제 신고송에 대한 연구는 "기초 문헌을 섬세하게 갈무리하고 남달리 활발했던 조직 활동과 매체 활동도 조사하는 바탕 위에서 당대 다른 작가들과 폭넓게 비교 대조하는 일"이 과제로 남았다.

결론은 이렇다. 신고송은 "우리 문학사가 보듬어 안아야 할 작가"이며 "그의 문학을 우리 근대 문학사의 중심으로 끌어안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학자답게 '도움글'(도움 받은 글과 책의 전체 목록)과 '신고송 해적이', '신고송 작품 죽보기'도 알차게 말미에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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