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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11) 소설가 김인배씨 | |
30년 세월 세상에 내어놓은 건 삶과 인간 관계에 대한 일상들 | |
그는 거침없었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마음 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햇살에 몸을 바싹 말린 낙엽이 바스락거리기 시작하는 10월, 그의 열정을 닮은 창신대학 캠퍼스에서 소설가 김인배(62)씨를 만났다. 15년 세월을 휘휘 돌아 다시 ‘소설’에게 돌아온 후 세 번째 소설집 ‘비형랑의 낮과 밤’(문학세계사刊)을 발표한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마주앉자마자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달리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사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첫 만남이라는 것도 잊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2~3개의 이야기가 생성되고 있었다. 특별히 메모광이 아님에도 유별난 구성 노트를 작성할 것도 없이 그의 소설은 그만의 세계 속에서 얼추 완성된다.
그의 등장은 화려했다. 1975년 28세의 청년이었던 작가는 ‘문학과 지성’에 ‘방울뱀’을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한국 소설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76년 동아문학상을 수상했고 1981년부터 1985년까지는 이문열, 윤후명, 유익서, 김원우 등 익히 알려진 이들과 함께 동인 ‘작가’를 이끌며 동인지를 4집까지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행보는 연속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82년 현대문학에 발표했던 중편 ‘물목’이 영화로 만들어졌고 1990년에는 같은 소설로 ‘올해의 문제 작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어 ‘하늘궁전’(문학과 지성사), ‘문신’(고려원), ‘후박나무 밑의 사랑’(문학과 지성사) 등을 발표하며 전성시대를 이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소설을 외면했다. 소설을 쓸수록 소설을 쓰기 시작한 첫 마음을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소설로 잡아 끈 것은 ‘삶의 구원’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에게 소설은 존재에 대한 탐구와 스스로의 구원에 대한 문제로 다가왔고 끊임없이 질문하게 했다. 20대 안에 등단하겠다는 계획은 성공했지만 문학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느냐에 대한 답은 묘연했다. 그리고는 1992년, 두번째 소설집을 발간한 뒤 절필하기에 이른다. 소설을 한쪽으로 밀어둔 그는 역사 공부에 몰두했다. 한·일 역사 왜곡에 대한 분개는 그로 하여금 진실을 밝히고 싶게 만들었다. 조부와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한문을 체득했고 덕분에 원하는 일본서기를 원문으로 읽을 수 있었다. 한·일 역사에는 파고들수록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 사실을 전하는 재미에 빠져 ‘일본서기 고대어는 한국어’(도서출판 빛남), ‘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우리문학사), ‘임나신론’(고려원), ‘고대로 흐르는 물길’(세종서적) 등 역사서와 연구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15년이 흘렀다. 하지만 역사로의 외도가 소설에 대한 배신은 아니었다. “지난 15년 동안 소설가가 아니었던 적은 없습니다. 내 본령은 ‘소설가’인 것이죠.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을 누르면 누를수록 발효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문장을 갈고 닦는 시간이었어요.” 삶의 구원에 대한 그만의 해법을 찾은 것도 다시 펜을 잡은 이유 중 하나다. “문학이 모든 인간을 완전히 구원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은 마음 속에 있는 법이죠. 소설은 자가 구원의 한 형식입니다. 나의 이런 생각을 소설로 써서 타인과 나누고 삶이 살 만한 것임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삶의 진정성을 찾았다고 했다. 70년대부터 현재까지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생각의 변화와 시도가 읽힌다. 그의 데뷔작인 ‘방울뱀’은 죽음을 화두로 인간의 삶에 대한 진정성을 이야기한다. 삶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죽음. 주인공은 방울뱀으로 표현된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반복한다. 결국 전쟁으로 망가진 몸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주변인들을 비웃으며 그 자신은 현실을 살아간다. 헛된 죽음은 외면하고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얻으려고 사랑을 향해 손을 뻗는다. 다음 소설 ‘문신’은 데뷔작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나병에 걸린 천재 화가가 애인에게 버림받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집에 불을 지른다. 화상을 입은 주인공은 애인을 친구에게 부탁하며 그녀의 마음을 시험에 들게 한다. 결국 변심한 애인과 친구의 관계가 깊어지자 낙담한 그는 진양호에 투신하고 만다. 현실을 극복하지 못했던 ‘문신’의 주인공에 이어 2008년, 작가는 현실을 사는 인간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탐구하며 설화 속에 등장하는 비형랑의 탈을 쓰고 나타났다. 삼국유사 속 ‘비형랑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퇴직 후 시골에서 습작 중인 주인공이 친구로부터 희대의 도둑 한제민의 수기를 받고 이를 통해 인간의 한계와 허무에 대해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나는 계속 눈을 감고 눈꺼풀 밑으로 펼쳐진 그 바다 앞에서 나만의 몽상에 오래 잠겨 있었다. 그 몽상 속에서 해수관음을 만나려고 오늘도 하염없이 물가를 서성거리는 누군가의 실루엣을 그려보았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을 시시각각 변경해 가며 찰싹거리는 파도가 시공을 허물고 지우듯 끊임없이 적시는 해안선을 그가 천천히 걷고 있다.” <‘비형랑의 낮과 밤’ 중> “비형랑, 한제민, 주인공 모두는 같은 인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인간이란 죽음과 삶 양쪽에 발을 담그고 삶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는 존재죠.” 30년에 걸쳐 긴 주기로 나이테처럼 세상에 내어 놓은 작품들은 일관되게 ‘삶’과 인간 간의 ‘관계’를 얘기하고 있다. 그가 준비 중인 새로운 소설 ‘그 덤불 속’ 역시 그렇다. 주인공이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있는 덤불을 헤매다 ‘드므’를 발견하는 내용으로 공동체적 삶이 망가진 사회를 꼬집는 이야기다. ‘드므’란 넓은 독이란 뜻으로 항아리 같은 지형을 일컫는 순우리말이다. 소설 속에 순우리말, 고유어를 추구하는 것도 그의 특징이다. ‘물목’의 경우, 한 페이지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뜻을 대략 짐작할 수 있지만 정확히 알지 못하는 단어 때문에 영어 원서를 읽는 것처럼 사전이 필요했다. 소설가에게 가장 큰 힘은 문장력. 문장을 이루는 요소가 바로, 단어. 그 단어를 그는 순우리말로 채우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 왔다. 끝내 하고 싶은 얘기 또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제목도 이미 정했다. ‘다도해’. 남해안에 떠 있는 무수한 섬들을 한 명 한 명의 사람들로 보고 이들 사이에 마침내 다리가 놓여 소통한다는 내용이다. “빛나는 감각과 치밀한 구성, 아름다운 문체로 짜여진 소설을 추구합니다. 무엇보다 여력이 있는 한 소설을 계속 쓰고 싶어요.” 곧 완성될 ‘그 덤불 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공중에서 활자화되어 귓가에 닿는 듯했다. 글=김희진기자 likesky7@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소설가 김인배씨는 1947년 경남 삼천포(현 사천시) 生. 진주교대, 동아대학교 및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5년 계간 문학과 지성으로 등단. 1976년 동아문학상 수상. 1987년 소설 하늘궁전(문학과지성사), 1992년 소설 후박나무 밑의 사랑(문학과 지성사), 2008년 소설 비형랑의 낮과 밤(문학세계사) 발표. 현재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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