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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출신 김륭시인 동시집 <경남도민일보>
작성자 경남문학관
댓글 0건 조회 3,158회 작성일 2009-09-01

본문

새롭고 어렵고 독특한 관습 떼어낸 상상력
진주 출신 김륭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 고양이>
newsdaybox_top.gif 2009년 08월 26일 (수) 김훤주 기자 btn_sendmail.gifpole@idomin.com newsdaybox_dn.gif

진주 출신 시인 김륭의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 고양이>는 '상큼'하다. 형식도 내용도 상큼하고 사물과 사물 사이 또는 생각과 생각 사이 관계도 산뜻했다. 낡음과 굳음이 낄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

표제작 전문이다. "우리 동네 구멍가게와 약국 사이를 어슬렁거리던 고양이, 쥐약을 먹었대요 쥐가 아니라 쥐약을 먹었대요 우리 아빠 구두약 먼저 먹고 뚜벅뚜벅 발소리나 내었으면 야단이라도 쳤을 텐데……// 구멍가게 빵을 훔쳐 먹던 놈은 쥐인데 억울한 누명 둘러쓰고 쫓겨 다니던 고양이, 집도 없이 떠돌다 많이 아팠나 보아요 약국에서 팔던 감기몸살약이거나 약삭빠른 쥐가 먹다 남긴 두통약인 줄 알았나 보아요//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고양이, 구멍가게 꼬부랑 할머니랑 내가 헌 프라이팬에 담았어요 죽어서는 배고프지 말라고, 프라이팬을 비행접시처럼 타고 가라고 토닥토닥 이팝나무 밑에 묻어주고 왔어요".

동시에서 형식은 이래야 하고 내용은 이래야 한다는 교조(敎條)가 단박에 깨어지고 없다.

흔하디 흔한 풍경을 풍성하고 실감나는 입체로 짜임새를 갖추는 상상력은 어떤지.

   
 
 
앞마당 빨랫줄에 앉았던 어미 새 한 마리
갸웃갸웃 오 촉 알전구보다 작은 머리
불이 들어왔나 보다

눈도 못 뜬 새끼들 배고파 운다고
동네 시끄러워 낮잠 한숨 못 자겠다고
나무에게 전화 받았나 보다

포동포동 살찐 배추벌레 한 마리 입에 물고
날아간다 꽁지 빠지도록
새끼들 찾아간다

나무의 가장 따스한 품속에 놓인 공중전화
벨소리 그치지 않는 둥지 찾아
날아간다

나무들도 전화를 한다
까맣게, 하늘이 새까맣게 타도록
전화를 한다

-'나무들도 전화를 한다' 전문

형식도 내용도 '상큼'  울퉁불퉁 이야기가 있는 동시 '공감'

'코끼리가 사는 아파트'는 너무 많이 다뤄 낡아진 정서를 달라진 시대 풍경에 맞게 일신(一新)했다.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와 훌쩍거리는 코와 코가 기다란 코끼리를 하나로 꿰었다.

604호 코흘리개 새봄이가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요
6층에서 1층으로, 1층에서 다시 6층으로 코를 훌쩍거리며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고 있어요 훌쩍훌쩍
코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어요
엘리베이터를 비스킷처럼 감아올린
코가 길을 잡아당기고 있어요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는 사람들 흘깃흘깃 쳐다보지만
엄마가 타고 다니는 빨간 티코를 감아올릴 때까지
새봄이 코는 길을 잡아당길 거예요

-코끼리가 사는 아파트 부분

   
 
  <변기 위의 아기 펭귄>  
 
이밖에 '달려라! 공중전화', '맛있는 동화-누렁이가 개나리를 낳았다', '꽃 피는 눈사람', '은행나무', '애벌레 열 마리', '고추잠자리', '낮달' 등도 눈길을 잡는다.

김륭은 책머리 '눈사람의 윙크'에서 말했다. "어린 시절을 도둑맞는다는 건 뜨거운 햇살 아래서 녹아내리는 눈사람처럼 참 슬픈 일인 것 같습니다. … 눈사람이 완전히 녹아내리기 전에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말도 적었다. "무슨 동시가 이렇게 어렵냐고 눈살 찌푸릴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 시골 할머니가 입고 있는 빨강내복처럼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관습적인(?) 상상력에서 조금이라도 멀리 달아나 보고 싶었습니다. 울퉁불퉁 이야기가 있는 동시를 쓰고 싶었고 아이들보다 먼저 엄마 아빠에게 읽어주고 싶었습니다."

이안 시인은 말미 해설에서 "일찍이 보여준 적이 없었던 자유로운 상상과 풍부한 언어 표현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층위의 토론 주제를 거느린 실험적 텍스트라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문학동네. 107쪽.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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