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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명받은 한권의 책] 강희근 시인·시문학연구소장 - ‘태백산맥’(조정래 著) | |
“인간·민족에 대한 성찰의 계기 될 것” 1980년대 문단·출판계·평론가 등이 최고 작품으로 평가 시대나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인간 사이의 갈등 표현 | |
오늘날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눈덮인 얼음산, 히말라야나 백두산을 등정하면서 ‘거기에 있기 때문에’라는 말로, 산은 발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어깨로 오른다’는 의미 깊은 말로 오르기도 한다. 책 읽기도 이제 ‘어깨로 오른다’ 같은 수준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눈앞에 보이는 문맥이나 형식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더 높고 더 깊은 데 자리한 정신 같은 것으로 하는 읽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필자가 권하는 책은 너무나 많이 알려진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다. 이 소설의 지은이는 필자의 대학 친구다. 친구가 쓴 소설이 이 나라 독서계를 휩쓸어 문단에서 ‘1980년대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었고 출판계에서도 ‘최고의 책’으로 손꼽은 바 있고 문학평론가 48명이 뽑은 ‘1980년대 최대의 문제작 1위’, 출판인 34명이 뽑은 ‘이 한 권의 책 1위’, 현역작가와 평론가 50명이 뽑은 ‘한국 최고의 소설’ 등으로 평가된 바 있으니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일반적 평가보다도 작가 조정래가 한 작가로서 이미 있어온 의식이나 세계에 머물지 않고 역사의 능선을 오르고 내리며 부단한 창작적 교양을 넓혀온 그 피나는 노력에 주목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작품 1권의 중반을 훑어내릴 때까지 같은 대학, 같은 캠퍼스에서 함께 고뇌를 주고받았던 ‘우리라는 방언’이랄까 ‘동류라는 정서’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다. 이것은 필자 특유의 독법에서 나온 재미 중의 하나다. 그런데 1권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작가는 필자를 떼어놓고 혼자 달리기 시작했다. 비키라 아베베 같은 대형 마라토너가 자기 나라의 검은색 선수들마저 떼어놓고 질주를 시작할 때 그 선수는 부단한 고독을 체험했을 것이다. 옆으로 보아도 경쟁 대상은 없고 뒤로 힐끔 보아도 따라오는 선수가 없을 때 선수는 자기와의 싸움만이 전부인 질주를 감행해 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때의 선수처럼 작가는 그가 누리던 현실에 어디가 미완이고 어디에다 날개를 달아주어야 하며 어디까지 가서 질주가 종료를 보게 되는지를 특유의 해석과 상상력으로 설계하며 또 실현해 나갔던 것이리라. 읽는 이는 소화의 사랑이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김범우의 인격이 어떤 매듭을 짓게 되며 염상진의 노을은 어디에 가 걸리며 솥뚜껑의 힘을 무엇으로 멈추게 할 수 있을지 숨죽이며 따라가 주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 소설이 평가되는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불 수 있었다. 시대나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드러나 있다는 것,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빚어지는 모든 사람 사이의 갈등이 총체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것, 벌교를 중심으로 한 전라도 방언의 현란한 실현을 보여주었다는 것, 역사의 현장과 작가의 상상력이 어울려 내는 대드라마, 그 이야기로써의 재미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 인간 또는 민족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소설은 여순반란사건이 끝나는 데에서 비롯되었고 분단의 역사가 고정되는 단계에서 끝난다. 우리 역사의 가장 숨가쁜 내부의 성감대를 건드리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독자여. 역사를 근거로 쓴 작품이라 하여 역사의 리얼리티로 읽는 것은 절대 금물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작품은 어디까지나 문학적 리얼리티로 읽어야 한다. 문학 안에서의 질서요, 흐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역사도 우리의 삶의 반영이라는 쪽에서 외면하지 않고 작품을 썼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작가는 이데올로기와 역사를 한층 그 위에서 조감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산행에서 발로 오르는가, 어깨로 오르는가를 모두가 한번씩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주저없이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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