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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 못 <경남신문>
작성자 경남문학관
댓글 0건 조회 2,520회 작성일 201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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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못
배단영(본명 배문경)

못을 뺀다. 낡은 벽장을 수리하기 위해 못 머리에 장도리를 끼우고 낑낑거리며 못을 뽑았다. 못은 야무진 벽을 뚫고 들어가 긴 세월 동안 제 역할을 다했다. 제 크기의 수십 배, 수백 배도 더 되는 무게를 견디느라 얼마나 힘에 부쳤을까. 무엇을 얹거나 걸면 못은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억지로 끌려나온 못이 허리 굽은 아버지를 닮았다.

여느 때와 같이 아버지는 해가 뉘엿할 때 들판으로 논물을 보러가셨다. 아침저녁으로 들판을 돌보시는 아버지의 눈에는 벼들의 성장이 푸짐하게 차려진 잔칫상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아버지의 다리가 허방을 짚는 듯하더니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다. 좁은 논둑은 아버지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쪽으로 흙을 밀어내며 내려앉았고 그 바람에 논바닥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넘어진 아버지가 쉬 일어나질 못하자 동네 친척이 업고 나왔을 때는 사위가 제법 어두워져 있었다. 동네 의원으로 모시고 가야 한다는 사람들의 웅성임 속에서도 아버지는 손사래를 쳤다.

“하룻밤 자고 나면 될 것을 무에 번거롭게…….”

흙탕물에 젖은 옷은 아버지의 몸에 붙어 잘 벗겨지지도 않았고 머리 밑까지 머드팩을 한 듯이 구석구석이 흙덩어리가 끼여 말끔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는 아픔을 억지로 견디려고 입을 꼭 다물었지만 신음소리는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빨리 약방에 가서 진통제와 파스를 사오라고 대문 밖으로 나를 내몰았다.

어둠은 앞산에서 시작해서 마을 전체를 상보처럼 덮고 있었다. 개구리 소리는 그날따라 더욱 청승맞게 들렸다. 달이 없는 하늘에는 견우성과 직녀성이 멀리서 마주보며 그리움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밤은 깊어 가고 있었다.

약과 파스의 효력을 못 본 아버지를 설득해서 진찰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사고로 허리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아버지는 의자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겨우 통증을 참아냈다. 다친 부위의 검사와 치료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지자 아버지는 괜찮으니 주사나 한 대 달라며 말꼬리를 자르셨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자신의 병이 가족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못내 껄끄러우신지 우리를 외면하고 돌아앉아 계셨다.

아버지는 부러진 뼈를 치료하기 위해 못을 박아 두 개의 뼈를 고정해 하나처럼 움직이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허리를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두 개는 그만한 기능을 위해서 필요한 숫자였지만 어느 날부터 하나로 살아야 한다는 특명이 내려진 것처럼 항명이 불가능해졌다.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병원에는 아버지와 비슷한 병으로 입원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단한 못이라고 생각했던 몸이 나이 든 사람들을 배신하는 듯이 보였다. 노년의 서글픔마저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

아버지는 들판에서 자라는 곡식들이 걱정된다며 몇 번인가 집으로 가자고 입원 중에도 고집을 부리셨다. 병원에서 제시한 퇴원날짜보다 앞당겨 나오셨지만 돌아오신 아버지는 사고를 당하기 이전처럼 많은 일을 하실 수가 없었다. 어이없이 발생한 사고에 비해 치유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허리뼈가 거의 완치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꼬리뼈가 다시 말썽을 일으켰다. 휘어진 척추와 금이 간 뼈 그리고 마음에 자리 잡고 있던 근심들은 노년의 아버지를 자유로움에서 멀어지게 했다. 신체적인 고통은 너그럽고 이해심 많던 아버지를 사막처럼 건조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작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동네사람들은 사람이 변하면 오래 못 산다며 뒤에서 말들이 많았다. 나는 못들은 척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평생을 농사꾼으로 사신 아버지는 땅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논 중에서도 가장 작고 볼품없는 논에 대한 개간 계획을 갖고 계셨다. 가족들이 무리한 일이라고 말렸지만 아버지는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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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논은 구릉과 구릉 사이에 끼여 정사각형도 직사각형도 아닌 삐뚜름하게 생겨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였다. 양 옆으로는 작은 개울과 구릉이 자리를 잡고 있어 논은 더욱 작아보였다.

아버지는 논을 반듯하게 만들겠노라 선언하시고는 밤낮없이 논에서 살다시피 했다. 거친 자갈밭과 바위들이 아버지의 손길을 거부했다. 굵은 칡뿌리는 잘라내어도 뿌리를 내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땅과 한판 승부를 낼 듯이 곡괭이로 땅을 뒤지고 돌을 주워 버렸다. 바로 옆 개울가는 아버지가 버린 돌들로 흙탕물이 되기 예사였다. 흐드러진 아카시아 꽃향기조차 아버지의 땀 냄새를 덮을 수는 없었다.

논은 조금씩 넓어졌다. 구릉에는 잡초와 잔나무들이 사라진 거친 자리를 대신해 모내기한 모들이 푸르게 자리 잡곤 했다. 모내기를 하던 첫 해에는 땅이 거칠어 일을 하던 아낙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수확량은 생각보다 아주 작았다.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친 추위를 이겨내고 거둔 성과는 논이 조금씩 커져가는 만큼 나타났다.

무리한 개간은 오남매의 뒷바라지는 가능하게 했지만 아버지의 몸은 휘어지고 내려앉아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무거운 짐을 가득 짊어진 못이었다.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뼈가 옆으로 휘어지는 통증에 고통스런 시간도 보냈으리라.

그나마 허리뼈를 못으로 고정해서 일상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아버지에게 이 막의 인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서 살아온 인생을 자신을 위해 살아 볼 수 있는 기회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회가 좋은 것이라고만 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흙에서만 살던 아버지가 농사를 접고 여가를 보내는 것이 행복할 수만은 없었다. 흙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들이 아버지 본인의 삶 자체라고 생각하는 분이었기에.

필요한 것을 걸기 위해서 다시 못을 박는다. 아이들의 커 가는 모습이 액자에 담겨져 한두 개씩 늘어난다. 큰애의 백일 사진이 돌 사진으로 바뀌고 둘째가 언니와 함께 찡긋 윙크하며 찍은 사진이 덧붙여진다. 단단한 못에 의지해 가족들의 수가 점점 늘어난다.

웃음꽃이 피어나는 곳에는 겸연쩍게 물러나 계신 아버지, 가족에게는 늘 힘이 되어 주었다. 아이들이 든든한 못을 배경으로 세상에 한 발자국을 내디딜 힘을 얻는다.

자신의 책임을 무던히 견뎌 주던 아버지는 내게 늘 휘어진 못으로 오래토록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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