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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도시, 노산문학제 만들자 | |
포항 사는 한 친한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산 참 가고 싶다. 무학산에서 바라보는 가을바다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린다. 관에서도 시인을 그렇게 위하는 걸 보니 시심 하나만큼은 제일로 깊은 도시 같다. 가을 가기 전에 회 한 접시 하게 초대 좀 해줘” 한다. 친구는 “‘시의 도시’에 사니 시 쓰는 넌 얼마나 복 받은 녀석이냐”고 뒷말을 잇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랬다. 지난 5월 마산시는 마산을 ‘시의 도시’로 선포하면서 산호공원에서 선포식을 가졌다. 물론 마산문인협회가 급히 동참하여 이뤄졌지만 문인들과 지역민들은 뜬금없다는 반응이었다. 평소 마산시가 그렇게 문학에 대해, 시에 대해 얼마 만큼의 관심을 가졌던가를 생각해 보면 그 당위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시장과 공무원, 시의회 의원, 국회의원들이 자리했지만 마산시와 문인, 시민들 간의 사전교감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진행된 듯한 ‘시의 도시’ 선포는 시(詩)는 없고 선포식만 있는 기형의 행사처럼 비춰질까 문인들은 노심초사했다. 문학은 메말라 가는 영혼에 서정의 잔을 부어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평소 문학의 밤 행사 같은 때도 시장이나 부시장이 함께 참석하여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시 한 수를 읊는다거나 미술전람회에 참석하여 화가들과 허심탄회한 시간을 얼마나 가졌던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저 공식 석상에서 준비한 축사원고나 읽고 퇴장하는 행위는 그다지 진정성은 없어 보인다. 그런 자리에서 현장의 목소리도 듣고 문학의 미래도 챙겨보았다면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해는 김달진문학제를 위해 1억원이 넘는 예산을 쓴다. 문학상 상금과 1박 2일의 행사에 그 정도의 돈을 지출하는 것에 대해 진해시 관계자와 시민들은 별반 불만이 없다고 한다. 김달진문학제를 통해 진해시를 알리는 비용 치곤 아깝지 않다는 반응이다. 봄엔 군항제, 가을엔 김달진문학제, 이런 쌍두마차로 문화 진해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왕에 선포한 시의 도시라면 필자는 이 지면을 빌려 명실상부한 문학축제를 하나 만들자고 제언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고파’만한 브랜드는 없다. 그러므로 노산문학제가 좋겠다. 부산의 요산문학제, 전북 고창의 미당문학제, 충북 옥천의 지용문학제 같은 축제를 마산에선들 왜 못 만들 것인가. 도시의 가슴을 열고 밀려 들어온 가고파의 바다와 돝섬, 바다에 잇닿은 무학산의 위용이 더해진 마산에서 띄우는 시의 향연은 충분히 한반도를 적실 수 있다. 멀리 시가지의 불빛을 배경으로 바다에 여러 척의 배들을 묶어 갑판 위에서 시를 낭송하고 노래하는 광경을 생각해 보아라. 뱃전에서 춤추고음악을 연주하는 풍경이라면 관심 있는 매스컴들은 집중적인 취재를 할 것이다. 적은 예산으로 시낭송 한 번 하고 작품집 한 권 내는 것으로 ‘시의 도시’는 언감생심이다. 적은 예산은 결국 적은 결과밖에 내지 못한다. 결국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투자비는 있어야 한다. 충분한 예산으로 제대로 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기획된다면 축제의 성공은 보장받는다. 나름대로 인프라 구축은 잘 되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강연회인 합포문화동인회의 민족문화강좌가 30년을 넘어섰다. 이 강좌와 단체가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태동시켰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단체가 매년 해 오던 노산가곡의 밤도 있다. 통영에서 윤이상 교가음악제를 했듯이 노산이 작사한 교가들도 찾아 교가음악회 같은 것도 해볼 만하다. 많이 알려진 노산의 가곡과 마산을 지키는 시인들의 시에 곡을 붙인 창작곡들을 묶어 발표회를 열면 그 또한 성대한 행사가 될 것이다. 노비산에 지은 마산문학관을 원래의 이름인 노산문학관으로 돌려주는 것은 너무도 시급하다. 추석을 보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제 고장을 알릴 축제의 계절이 왔다. 마산을 대표하는 국화축제가 곧 열리겠지만, 개천예술제에 비하면 어딘지 정신 하나가 빠진 듯한 허전함은 어쩌지 못하겠다. ‘시의 도시’에 사는 시인으로서 긍지가 없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당당히 ‘시의 도시’ 마산으로 오라고 말할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이달균 칼럼 시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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