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조시단을 대표하는 문학상이자 가람 이병기 선생의 문학작품을 기리기 위한 제31회 가람시조문학상에 김연동 시조시인의 '무너지는 우상', 신인상에는 김선화 시조시인의 '숲에 들어'가 당선됐다.
▲ 왼쪽부터 김연동, 김선화 시인
지난 22일 개최된 가람시조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장 한분순)는 본상과 신인상에 후보자 36개씩 작품을 놓고 고심 끝에 최종 당선자를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현대시조의 격과 품을 높인 가람선생의 시 정신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시조의 미래적 지남이 될 만한 작품에 돌아갔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들은 가람시조문학상 김 시인은 작품을 통해 몰락하는 우상을 조명함으로써 어두운 곳에서 아직도 부질없는 우상을 세우려는 어리석은 권력을 질타하고 있다며 이시대의 호명에 응답하는 당당한 시인의 자세를 흩뜨리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고 평했다.
또 신인상 김 시인은 여류시들이 여성시의 한계 극복을 이유로 지나치게 거칠어져서 지쳐버린 독자가 적지 않은 이때에 따뜻한 시인의 목소리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가람시조문학상 시상은 오는 5월 9일 솜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익산시민의 날 행사에 실시된다. 본상 수상자인 김연동시인에게는 상패와 상금 1천만 원이 수여되며, 신인상 수상자인 김선화시인에게는 5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심사위원회(한분순)의 심사평은 다음과 같다.
가람시조문학상 김연동
김연동은 30년에 가까운 시력을 지닌 중진 시인이다. 그의 언어들은 세밀화풍에 익숙한 편이다. 가령 <점묘하듯, 상감하듯>이나 <갈대> <혼곡리 소곡>등을 보면 대상을 스케치해내는 치밀한 세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수상작 <무너지는 우상>은 그런 장기와 다르게 추상화풍이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한편인 <저문날의 구도>처럼 상황을 그려내는 이 시인의 또 다른 개성의 일면을 본다. 우상에 대한 파괴 의지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다. 4,19나 5.18같은 우리의 역사에서나 오늘날 튀니지에서 일어나서 거대한 파문을 던지고 있는 자스민 혁명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민중의 힘이다.
그런 힘의 도도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남모르게 우상을 건설하는 병든 권력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시인은 몰락하는 우상을 조명함으로써 어두운 곳에서 아직도 부질없는 우상을 세우려는 어리석은 권력을 질타한다. 호방한 필치가 독 묻은 화살처럼 거칠어진 것은 그런 분위기를 빚어내려는 시인의 의도에 다름 아니다.
지난해에 『시간의 흔적』이란 시조집을 내기도 한 이 시인은 이제 그의 두 가지 시적 개성을 심화시키며 이시대의 호명에 응답하는 당당한 시인의 자세를 흩뜨리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가람의 시조 혁신론 중에는 ‘실감, 실정을 표현하자’는 주장이 있다. 상황에 대처하는 시인의 자세는 시정신과 관련되는 정신의 영역이고 인격의 영역이다. 시조가 좀 더 정직한 자세로 오늘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을 때 독자의 사랑을 받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수상을 계기로 더욱 발전하길 빈다.
가람시조문학신인상 김선화
김선화는 연소한 시력의 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시조들은 휴머니즘의 옷을 맵시 있게 입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꽃>에서는 내전의 포화 속에서 가장이 되어버린 불쌍한 소년 '압둘바리'를 그리고 있고 <아버지의 바둑>에서는 '타계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가슴에' '짓는' 아버지의 '돌집'을 눈물겹게 노래한다. 또 <닮았다>에서는 평생 ‘백수건달 남편’과 '껄렁대는 아들'을 부양해야 하는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 한 아낙네를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엔 눈물이란 단어가 곧잘 등장한다. 눈물의 의미가어디에 있건 현대시조에서 바람직한 기법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독자를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그 마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삶을 대하는 경건하고 진솔한 그의 시작태도가 그 마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진솔은 순백의 울림이 되어 가슴에 닿는다. 수상작인 <숲에 들어>가 그런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눈이 쌓여있는 나무를 시적 자아는 미사를 보고 있는 어느 신도의 모습으로 환치해낸다. 거기서 상처를 발견하고 그 발견이 스스로의 성찰에까지 닿는 과정은 수다스럽지 않으면서도 따스하고 자상스럽다. 여류시들이 여성시의 한계 극복을 이유로 지나치게 거칠어져서 지쳐버린 독자가 적지 않은 이때에 이런 시인의 목소리 또한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이 시인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고 순백하고 겸손하고 자상하다고 해서 연약한 것은 아니다. 삶을 긍정하는 그의 의지와 눈빛이 그 증거이다. 부디 더 발전해서 수상의 영광에 보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심사위원
한분순(시인, 심사위원장)
김제현(시인)
이우걸(시인, 글)
조영일(시인)
진희섭(익산시 전략산업국장)
수상소감
김연동
시조를 쓴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요즘 들어 시조와 함께 호흡하는 시간을 전보다 많이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죽는 날까지 더불어 걸을 수 있게 된 것을 가슴 뿌듯하게 여긴다.
정년퇴직을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동안 접어두었던 해외여행 길에 올랐다. 제법 긴 여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기내에서 핸드폰을 켜는 순간,「가람時調文學賞」수상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시차로, 여독으로 얼얼한 머리가 더욱 혼란스러웠다. 수상소감을 쓰라는 전갈을 받고 소감문을 쓰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무슨 전율 같은 것으로 눈과 손끝이 얼얼하다.
가람 선생은 난 같은 정결함과 올곧은 구도적 정신세계로 격조 높은 시조를 보여준 현대시조의 개척자가 아닌가. 우리 민족의 영혼을 감동시켜온 가람 선생님의 높은 이름으로 후배 시인들에게 내리는 상이라 그 무게가 저에게는 너무 크다는 생각이 앞선다.
시조의 맥이 단절된 상황에서 황진이의 「어저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든가./ 이시라 하드면 가랴마는 제 굿하야/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의 한 편을 스승 삼아 시조에 전념하셨던 가람이 아니신가? 시조의 격조를 높이고 새롭게 가꾸셨던 선생의 큰 길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사람으로서 벅차오르는 감정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등단 무렵 박재삼 선생께서 “시조의 초장 첫 구에 3.3은 피하라”고 가람선생께서 이르셨다는 말씀으로 가르침을 주셨다. 그 간접 전언을 지키려 애써왔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시조를 써 오면서 격조 있는 시조가 되기 위해서는 꼭 지켜야할 음보상의 유의점이라는데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제된 시어의 선택과 함축적 표현으로 민족적 정서를 끊임없이 새롭게 구축해 가야한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진보된 정형시로서 독자를 확보해 나가는 길에 매진하라는 뜻으로 이 상을 가슴에 깊이 새기며 받는다.
수상자로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장님을 비롯한 위원님께 심심한 감사를 올리며, 뽑아 주신 뜻에 부응하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또한,「가람시조문학상」을 제정하여 그 수상자를 시상해오고 있는 익산시민과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가람문학회 회원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김연동(金演東) 약력
- 1948. 경남 하동 출생, 창원 거주.
- 1987. 경인신춘당선, 시조문학천료, 월간문학신인상당선 등으로 등단.
-《중앙일보》중앙시조대상(신인상), 경남시조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마산시문화상, 경상남도문화상, 경남문학상, 《중앙일보》중앙시조대상(大賞), 김달진지역문학상 등을 수상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받음.
- 《경남신문》신춘문예 및 《중앙일보》연말장원 등의 심사위원.
- 「저문 날의 構圖」,「바다와 신발」,「점묘하듯, 상감하듯」,「시간의 흔적」, 등의 시집과 사화집「다섯 빛깔의 언어 풍경」(5인 시조집)이 있고, 평론집「찔레꽃이 화사한 계절」이 있음.
- 김해여자중학교 교장, 경상남도교육연구정보원 원장 등 역임.
-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 받음.- 인제대학교육대학원겸임교수 역임.
- 현재, 오늘의시조시인회의 부의장, 국제펜클럽경남지역부의장.
수상소감
김 선 화
나이 들어 시작한 문학의 길, 단지 글을 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제게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이름으로 된 큰 상을 주시니 너무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가슴 뛰는 기쁨으로 한동안 설레었습니다. 그러다 엄청난 부담이 밀려들었습니다. 아직은 부족하다고 여기는 제가 이런 큰 상을 받아도 되는가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이제 용기를 내어 제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병기 선생님께서는 ‘시조혁신론’에서 진솔한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할 것을 강조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깊고 큰 시조의 그릇에 꾸밈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제 자신만의 정서를 담는데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은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더욱 생각납니다.
치매에 걸려 오래 누워 계신 어머니를 보며 시를 쓰기 시작했고, 늘 제 주위를 맴돌며 온기를 주시는 어머니. 그 영전에 이 상을 바치겠습니다.
저를 믿고 상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도해 주신 선생님, 문학의 길을 함께 걷는 문우, 항상 든든한 후원자인 남편과 가족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김 선 화 약력
1959 서울출생.
2006년『유심』<단추를 달며> 로 등단.
한성대학교 대학원 한국어문학과 졸업.
현재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차장.
가람시조문학상 작품
무너지는 우상 - 김연동
날선 시선들로 교전하는 거리위에
짓밟혀 피 흘리는 일그러진 우리 우상
누리고 다지던 자리 무너지고 있나니,
댓잎처럼 푸른빛을 꿈꾸던 시간에도
진창의 풀잎위에 찬바람 일으키고
그늘 속 시린 손마저 매섭게 뿌리쳤네
돌아보면 그리운 길, 그 푸르던 전설까지
이 시대 불문율로 몰아가는 벼랑 끝에
한 발짝 물러설 곳도 앉을 곳도 이제 없네
가람시조 문학상 신인상 작품
숲에 들어 - 김선화
함박눈 미사포를 쓴
나무에게 배웠네
하늘 향해 손 모아 기도하는 마음을
안으로 아픈 기억을
다스리고 있음을
사나운 비바람에 꺾이며 떨던 시간
인고를 새기던 기나긴 발자국이
옹이진
상처였음이
눈으로 만져지네
화장을 지우고 엉킨 마음 나도 비우니
하늘에 기대어 빚지며 살아온 나날
꽃망울 세우는 핏줄 아프도록 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