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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문단·문인 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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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작성자 경남문학관
댓글 0건 조회 1,232회 작성일 200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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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자는 잠- 김순




퍽, 퍽. 곡괭이 날이 튀어 오른다. 발뒤꿈치에 온 힘을 싣는다. 곡괭이를 내리칠 때마다 장딴지에서 시작된 통증이 허리와 어깨를 관통한다.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준다. 오른발이 날카로운 철사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왼쪽 다리를 지렛대처럼 지탱하고 중심을 잡아보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여주지 않는다. 아침에 연장을 어깨에 둘러메고 산으로 올라가는 등 뒤에다 대고 소장이 비아냥거렸다. 전씨, 그 몸으로 일할 수 있겠어요? 이제 쉴 때도 됐잖아요. 소장의 말마따나 칠십을 코앞에 두었으니 쉴 때가 지나도 한참은 지났다. 칠십 평생을 막일로 굴린 몸이라 일이라면 이골이 날대로 났지만, 요즘 같아서는 만사가 귀찮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그런 내색을 해본 적이 없다.

한 자 정도 땅을 파 내려가자 얼었던 흙이 떡고물처럼 고슬고슬하다. 어깨에 힘이 덜 들어가고 곡괭이 날이 땅속 깊숙이 박힌다. 곡괭이로 어느 정도 파놓은 흙을 다시 삽으로 퍼내기 시작한다.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면 금방 끝낼 수 있는 일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하자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성가시다. 묘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포클레인이 들어올 수가 없다. 내가 삽으로 퍼낸 흙을 한쪽으로 모으고 있을 때, 윤씨가 손수레 가득 조화를 싣고 언덕을 내려가는 것이 보인다. 꽃상여 같다. 설날인 그제께 성묘를 다녀간 사람들이 먼지가 묻고 더러워진 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갈아 꽃이 만발했다. 바람에 꽃향기가 묻어나는 것 같다. 명절 뒤끝엔 몇 트럭분의 쓰레기가 나온다. 조화와 막걸리 병, 소주병, 일회용 접시, 음식찌꺼기 등, 쓰레기를 치우느라 며칠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바쁜 걸 어떻게 알았는지 설 전후로 매장이 없다가 오늘 한꺼번에 두 건이 들어왔다. 내일과 모레 매장이 있다. 일이 없을 땐 혼자 관리하다가 일이 많을 땐 윤씨를 부른다.

까마귀 떼가 날아오른다. 햇볕이 따뜻하게 비추는 남향의 묘지 주변엔 까마귀들이 성묘를 지내고 난 뒤 놓고 간 음식을 먹느라 분주하다.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한 무리의 까마귀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자갈 구르는 소리가 난다. 무리에서 이탈한 까마귀 한 마리가 내 주위를 빙빙 돌며 먹이를 찾아다닌다.

“저 놈의 까마구 새끼들.”

꽃집 여자가 언제 왔는지 두 팔을 휘저으며 까마귀를 내쫓는다. 공원묘지에서 꽃을 파는 여자다.

“전씨, 오늘 매점이랑 찜질방 가기로 했는데 안 갈라요?”

“싫습니다.”

나는 광중 속의 흙을 퍼내며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지 않는데 유독 여자와 말을 섞으면 곱게 나오지 않는다. 화장을 떡칠한 여자의 몸에서 사취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러지 말고 한번 같이 갑시다. 시원한 식혜도 마시고…. 매점이 한 턱 쏜다고 했으니 우린 몸만 가면 된다니까요.”

“그래도 싫습니다.”

“전씨는 맨날 남의 구덩이나 파다가 죽을 거요? 재미대가리도 없이.”

“재미로 세상사는 겨? 아지매 구덩이도 하나 파 드릴까?”

“이 영감탱이가 미쳤나봐. 내가 미쳤지. 무슨 좋은 소릴 듣겠다고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저러니 혼자 살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한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을 내려간다. 여자와 나는 고양이와 개처럼 으르렁거린다. 여자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탓일까. 여자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화부터 먼저 난다. 젊은 나이에 딸 하나를 데리고 나이 많은 공원묘지 사장한테 재취로 들어왔다. 말이 재취 자리이지 집안 살림을 해주는 파출부나 마찬가지였다. 계약금조로 얼마의 돈을 받고 들어왔다지만 나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여자는 집안일뿐만 아니라 공원묘지의 잡일까지 다 했다. 그러면서도 내 앞에서는 사모님 행세를 하며 얼마나 거들먹거리던지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상종조차 하기 싫다. 여자는 사장이 죽자 그 길로 쫓겨났다. 소장은 어쨌든 한때, 자신의 아버지를 돌봐준 여자를 모질게 할 수 없었던지 사무실 한 귀퉁이에 방을 내주고 공원묘지에서 장사를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컨테이너 박스로 지은 허름한 창고에서 꽃을 파는 여자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지나가는 남자들을 보면 꽃 안 사유, 저 마음에 안 들면 이 꽃은 어떠유, 하며 주책을 떨었다.

영도가 휘뚤휘뚤한 산길을 따라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생화보다 더 진한 노란 국화꽃 한 다발을 들고 껑충껑충 뛰어온다. 용돈이 생기면 공원묘지에 올 때마다 꽃을 사오기도 하고 돈이 없을 땐 야산에 핀 들꽃이나 남의 집 담장에 핀 장미를 꺾어온다. 나는 허리에 삽을 장총처럼 세우고 영도가 가까이 오는 것을 지켜본다.

“우리 엄마 어딨어요?”

언덕을 올라오느라 숨이 턱까지 찬 영도는 숨돌릴 틈도 없이 묻는다.

“저기, 저 큰 나무 뒤쪽에….”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제법 큰 공작측백나무를 가리킨다. 내가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던 영도는 묏등이 봉긋한 산소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다.

“안 추워? 집에 있지, 뭐 하러 왔어?”

“엄마도 추워요.”

“그래, 니 엄마도 추울 게다. 그래서 엄마한테 주려고 꽃을 사왔구나?”

“네”

“니 엄만 참 좋겠다. 아들이 이쁜 꽃도 사다주고.”

칭찬을 들은 영도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벙글거린다. 자신이 사들고 온 노란 조화에 코를 박고 끙끙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공작측백나무가 서 있는 묘지로 간 영도는 꽃병에 꽂혀 있는 꽃을 멀리 던지고 자신이 사온 꽃을 꽂는다. 나는 영도가 버린 꽃이 어디쯤 떨어졌는지 눈으로 확인한다. 꽃은 봉분이 내려앉아 흉하게 변한 묘에 떨어진다. 나는 영도가 가고 나면 다시 그 꽃을 주워 제자리에 갖다놓을 것이다. 성묘를 다녀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온 꽃이 어떤 꽃인지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혹시 있을 불상사를 대비해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 놓는다.

나는 영도가 지금까지 사온 꽃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컨테이너 창고 안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그걸 본 여자가 값을 후하게 쳐주겠다며 자신에게 팔라고 했다. 내가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일축해버리자 여자는 융통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양반이라며 나를 몰아세웠다. 여자의 꿍꿍이속을 잘 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되팔면 그만큼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여자는 내가 자신의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자 영도의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일부러 모자란 척하는 거 아니냐고, 얼마나 꽃을 주무르고 냄새를 맡는지 아마 생화였다면 짓물러 하나도 못 쓰게 됐을 거라고 투덜거렸다. 나는 정상적인 아이라면 조화에 냄새를 맡겠냐고 대꾸를 하려다 여자와 입씨름하기 싫어 그만두었다.

영도가 자신이 입고 있는 오리털 파카를 주섬주섬 벗어 봉분 위를 덮는다. 엄마가 추울 거라고 하더니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가끔 생각지도 않는 행동을 하는 영도를 볼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몸만 성하다면 어디에 내놔도 남부럽지 않게 잘 컸을 아이다. 영도는 철퍼덕 엎드려 연거푸 절을 하기 시작한다. 절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것 같다. 영도는 한 가지 재미에 빠지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계속한다. 영도에게 공원묘지는 사람이 죽어서 묻힌 엄숙하고 무서운 장소가 아니라 뛰어다니며 노는 놀이터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가을, 추석을 코앞에 두고 벌초를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을 때 불쑥 찾아와 물었다. 우리 엄마 어딨어요? 나이 든 사람들이나 오랫동안 성묘를 오지 않은 사람들이 산소를 찾지 못해 종종 물어볼 때가 있었다. 니 엄마가 누군데? 나는 빨리 일을 끝낼 욕심으로 낫을 손에서 놓지 않고 건성으로 물었다. 엄마가 나도 안 데리고 갔어요. 열대여섯 살쯤 되었을까. 나이에 비해 말투가 어눌하고 어린애 같아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영도는 자신의 엄마 산소를 찾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 것처럼 울먹거리며 내 뒤를 따라다녔다. 나는 할 수 없이 하던 일을 제쳐두고 영도를 따라 나섰다. 엄마가 언제 죽었느냐, 나이가 몇 살쯤 됐느냐 물어도 엉뚱한 대답만 늘어놓았다. 넓은 공원묘지를 다 돌아다녀도 끝내 산소를 찾지 못했다. 장부에 적힌 명단까지 확인했지만 허사였다. 계속 절을 하는 영도를 향해 나는 그만 하라고 소리친다. 모자를 깊숙이 눌러 써 내 말이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다시 소리치자 그제야 뒤를 돌아본다. 봉분 위를 덮었던 옷을 두고 내려온다. 옷을 가져와 입으라고 했더니 부스러기가 잔뜩 묻은 옷을 털지 않고 그대로 입는다. 연신 코를 훌쩍거린다. 날도 추운데 점퍼를 벗어 고뿔에 걸린 모양이다. 나는 옷에 묻은 부스러기를 털어주며 감기도 걸렸는데 날이 풀리면 그때 놀러 오라고 조곤조곤 타이른다. 영도는 뿌루퉁해져 화풀이하듯 광중 속으로 돌을 차 넣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간다.

뒤늦게 성묘를 온 성묘객들이 눈에 띌 뿐 공원묘지는 한산하다. 나는 컨테이너 창고에서 대충 점심을 때우고 느긋하게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언제 왔는지 양씨의 모습이 보인다. 늙은이들은 밤새 안녕이라고, 사흘돌이로 오던 양씨가 며칠째 보이지 않아 걱정하던 차였다. 잠든 아들의 이마를 쓰다듬듯 묏등을 쓰다듬는 양씨의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햇살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그녀의 굽은 등 위에서 미끄럼을 탄다. 제수용품을 준비해 왔는지 상돌 위에는 사과와 배 포 종이컵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번 설에 성묘하러 안 오셨더구먼요.”

반가운 마음에 나는 인사도 없이 대뜸 묻는다. 양씨가 찔꺽눈을 치뜨며 뒤돌아본다. 며칠 앓다가 나왔는지 얼굴이 해쓱하다.

“오랜만이네요. 해필 명절 때 다리가 고장 났지 뭐유.”

“몸이 안 좋으면 집에 있지, 뭐 하러 오셨어요? 내가 아들한테 말 잘해놨는데….”

“뭐라고 하셨는데요?” 그녀가 아들 말이 나오자 정색을 하며 묻는다. 나는 그녀를 위로할 셈으로 한 말인데 그녀가 정색을 하고 묻자 당황한다.

“이제 니 엄마도 나이 들고 몸도 안 좋으니까 그만 놔주라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우리 아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자기도 엄마가 그만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하더구만요.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고생은 무슨 고생을 했다고…. 내가 누구 때문에 사는데.”

내가 꾸며낸 이야기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양씨는 자식 이야기만 나오면 눈시울을 붉힌다. 마음이 짠하다. 10년 전, 생때같은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은 양씨는 군에 간 아들 면회 오듯 찾아왔다. 소주 한잔을 따라놓고 잠이 든 아들 이마를 쓰다듬듯, 밤송이처럼 까칠까칠한 묏등을 쓰다듬는 양씨를 보며 몇 번 찾아오다가 말겠거니 했다. 누구나 처음엔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해 자주 찾아오다가 시간이 지나면 뜸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양씨는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도 변함이 없었다. 관절염이 심해져 갈수록 O자로 휘어지는 다리를 질질 끌며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왔다.

아무 때나 찾아와 술을 따라 주는 양씨가 부럽다. 나는 무연고 쪽으로 눈길을 준다. 야산을 끼고 돌아앉아 낮에도 해가 들지 않아 을씨년스럽다. 늘 지나다니는 길인데도 가끔씩 그 앞을 지날 때면 등골이 오싹해지곤 한다. 나는 양씨처럼 드러내놓고 아들을 찾아가 술을 따라 줄 처지가 못 된다. 늘 멀리서 멀뚱히 바라보거나 아무도 없을 때 잠깐씩 다녀오는 것이 고작이다.

“이번 설에 빈병이 많이 나왔더라고요. 눈에 잘 띄는 곳에 모아두긴 했지만 구석구석 잘 찾아봐야 할 겁니다. 내가 안 바쁘면 도와줄 텐데, 혼자 힘들지 않겠어요?”

“쉬엄쉬엄 하지요, 뭐. 그 전에 아들이랑 한 잔 하고요. 같이 한 잔 안 하실래요?”

“두 모자가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데 괜히 끼어들어 무슨 구박받으라고요. 리어카가 안 보이네.”

“힘들어서 저 밑에 두고 왔어요. 좀 있다 가서 가져와야지요.”

양씨의 리어카가 도로가에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자신의 몸도 건사하기 힘든데 공원묘지에 올 때마다 리어카를 끌고 와 빈병을 수거해 간다. 리어카는 예전에 내가 썼던 것이다. 공원묘지에 왔다 갔다 하며 얼굴을 익힌 양씨가 하루는 빈병을 가져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폐품수집 업자가 가끔씩 들러 수거해 갔지만 제때 치우지 않아 빈병이 여기저기 나뒹굴어 일하다가 깨진 유리병에 손을 다치기도 했다. 빈병이 많아도 가져가는 것이 문제였다. 리어카를 장만하려면 당장 돈이 들어갔다. 나는 고장이 나 오랫동안 쓰지 않고 한쪽 구석에 세워둔 리어카를 꺼냈다. 삭아서 너덜너덜해진 고무바퀴를 새로 갈고 철제를 잇댄 나무판자도 깨끗이 손질했다. 수리를 해 깨끗해진 리어카를 받아든 양씨는 이 신세를 어떻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그런 양씨 앞에서 차마 그 리어카가 아내와 아들의 상여였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땅을 파기 시작한다. 가로 이미터 십 센티, 세로 칠십 센티의 직사각형 유택을 짓는다. 일은 단순하면서도 때로는 정교함을 요한다. 무엇보다도 돌이 삐져나오지 않도록 반듯하게 땅을 파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땅을 파는 것에 불과하지만 사람이 죽어서 영원히 살 집이라고 생각하면 더 신경이 쓰인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까짓 것, 죽어라 땅을 파면 되지 않느냐고. 맞는 말이다. 죽어라 땅을 파면 된다. 하지만 일 미터 넘게 땅을 파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땅을 깊이 파야 시신이 삭을 동안 잡벌레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가 있고 또 공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한 삽씩 흙을 퍼 낼 때마다 아내와 아들이 살아갈 집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일해왔다. 벽마다 곰팡이가 슬고 한여름에도 냉기가 차오르는 집에서 늘 천식을 달고 살았던 아들, 죽어서라도 습기가 차지 않고 따뜻한 곳에서 편하게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불이야!”

일이 거지반 끝나갈 무렵, 산불감시원이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광중 속에서 나와 산불감시원이 불을 끄고 있는 2구역 쪽으로 뛰어간다. 무슨 일일까. 마음만 앞설 뿐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가 않는다. 공원묘지를 조성할 때 산에서 굴러 떨어진 돌에 발등을 다쳤다. 뼈가 가루처럼 으스러져 인조 뼈를 박아 넣었다. 걸을 때가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남의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이 들고 건강이 나빠지면서 눈에 띄게 절뚝거린다. 나는 디딜방아처럼 절뚝거리며 정신없이 뛰어간다. 다행히 산불감시원이 일찍 발견해 불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묘지 한 기가 폭탄 맞은 것 같이 시커멓게 그을렸다. 집에 간 줄 알았던 영도가 산불감시원 주위를 빙빙 돌며 안절부절못한다.

“춥다고 라이터로 불을 피웠나 봐요.”

감시원이 일회용 라이터를 내민다. 영도가 내 눈치를 보며 감시원 뒤로 슬금슬금 숨는다.

집에 가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듣지 않더니 끝내 일을 내고 말았다. 나는 어디서 못된 짓을 배웠냐며 소리를 냅다 지른다.

"춥다고 빨리 집에 가라고 했지. 그런데 왜 할애비 말을 안 듣고 사고를 쳐? 어떻게 할 거야, 이거."

내가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본 영도는 겁을 먹었는지 큰 눈을 끔뻑거리며 울상을 짓는다. 영도를 혼내고 있는데 산불감시원이 턱짓을 한다. 소장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헐레벌떡 산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어떻게 알았을까. 꽃집 여자가 손차양을 만들어 염탐꾼처럼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여자가 일러바친 게 틀림없다. 꽃집에서 공원묘지가 한눈에 들어와 가만히 앉아서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있다. 나는 영도의 등을 떠민다. 영도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뺀다.

"맨날 전씨 찾아오는 그 미친 놈 어디 갔어요? 그놈이 불냈다면서요."

소장은 두리번거리며 영도를 찾는다. 언덕을 올라오면서 마주쳤는데도 모자를 눌러 써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미친 애라뇨. 그 앤 미치지 않았어요."

"지금 내 앞에서 그놈을 두둔하는 겁니까? 전씨가 그놈을 감싸주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니오? 설이 지났으니 망정이지, 가족들이 성묘를 하러 왔다가 이 꼴을 보고 뭐라고 하겠어요? 내 눈에 띄기만 해봐라. 당장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려 놓을 테니." 소장이 잔소리를 쏟아내는 동안 나는 검게 그을린 묘지를 손으로 문지른다. 시커먼 잿가루만 날릴 뿐, 그대로다. 새로 풀이 돋아나는 봄까지 썩은 이빨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소장이 투덜거리며 내려간 뒤에도 나는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내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것 같다. 육만 평의 넓은 공원묘지에 내 손이 안 거쳐 간 곳이 없다. 봉분에 떼를 입히고 표석을 세우는 것도 내 손으로 다 했다. 공원묘지를 둘러싼 숲에서는 벌써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다. 나는 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동안 넋을 놓고 앉아 있다. 두리번거리며 양씨를 찾는다. 리어카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빈병을 주워 간 모양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 나는 습관처럼 심호흡을 한다. 중앙집중식 난방이라 난방에 신경 쓸 일이 없는데도 집안 어디에선가 연탄가스가 새어 나오는 것 같다. 입안에 거품을 문 채 아들을 안고 쓰러져 있는 아내의 환영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벌써 몇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새록새록 하다. 장마철에 피워두었던 연탄아궁이에서 빠져나온 가스가 아내와 아이의 숨통을 막아버렸다. 퇴근을 서두르던 나는 소강상태에 있던 장맛비가 무서운 기세로 퍼붓기 시작하자 작업복으로 갈아입을 틈도 없이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기껏 파놓은 광중 속으로 시뻘건 진흙이 쏟아져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에 매장이 세 건이나 잡혀 있었다.

죽는 사람이 날씨 봐가면서 죽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비가 오면 낭패였다. 광중 속에 가득 찬 진흙을 다시 퍼내고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비닐로 덮어씌워 단속을 해놓고 집에 왔을 때, 아이는 이미 숨져 있었고 아내는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사흘 내리 술만 퍼마셨다. 같이 따라 죽을 생각이었다. 끝내 죽지도 못하고 피를 토하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 며칠 만에 출근을 했을 때 사장은 내 등을 다독이며 위로를 해주었다. 어쩌겠는가. 산사람은 살아야지…. 사는 게 원수처럼 느껴졌지만 사장의 말처럼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는 모양이었다.

벽에 걸린 아내의 알록달록한 원피스와 아들의 청바지가 눈에 들어온다. 재작년 기일 때 마지막으로 산 옷들이다. 나는 해마다 기일이 돌아오면 아내와 아들의 옷을 한 벌씩 샀다. 두 사람을 묻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밟힌 것은 목이 축 처진 채 벽에 걸려 있는 옷이었다. 꼭 아내와 아들이 나란히 목을 매고 죽어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입었는지 11살의 아들이 입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아 보였고 아내의 원피스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었다. 나는 아내와 아들이 좋은 옷도 못입고 헐벗고 지내는 바람에 죽기라도 한 것처럼 옷을 사 날랐다. 아들이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는 그또래의 아이들을 보며 옷을 샀고 스무 살이나 서른 살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일도 그만두었다. 아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흐릿해져 가는데 입지도 못할 옷을 사는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뜬다. 아내의 목소리다. 아무도 없다. 요즘 부쩍 환청에 시달린다. 아내의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선명해진다. 어젯밤 술을 마시다 그대로 잠이 들었는지 소주병과 스테인리스 그릇에 말라비틀어진 창란젓갈이 보인다. 이불도 덮지 않고 거실에서 그대로 잠이 들어 허리가 아프다. 벌써 여덟시가 넘었다. 아홉시에 매장이 있어 늦어도 여덟시까지는 가서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늑장을 부리며 일어난 나는 소장이 또 뭐라고 하면 때려치우지 뭐, 하며 호기를 부려본다. 거울에 비친 늙은 영감쟁이가 그런 나를 보고 기특하다는 듯이 싱긋이 웃는다.

"공원묘지로 갑시다."

조금 전까지 호기를 부리던 모습과 달리 나는 아파트 입구에서 유턴하는 택시를 간신히 잡아타고 서두르기 시작한다. 택시 운전사가 백미러를 통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아침부터 공원묘지엔 뭐 하러 가시는데요, 영감님. 거긴 죽어서 가는 곳인데…."

"죽지 않아도 매일 가는 사람이 있어요. 흐흐흐…. 내가 거기서 죽은 사람들 집을 지어주거든요."

"영감님이요?"

"기사양반도 혹시 필요하면 나한테 부탁해요. 내가 멋들어지게 지어 주리다.”

한참을 잘 달리던 택시가 끽 소리를 내며 갓길에 멈춰 선다. 소태 씹은 얼굴을 한 택시기사가 나이를 처먹었으면 곱게 처먹지 아침부터 별 재수 없는 소릴 다 한다며 당장 내리라고 큰소리를 친다. 나는 사차선 도로에 서서 멀리 달아나는 택시의 꽁무니를 쳐다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누구나 한번 태어나면 죽는데,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을까. 사무실 문 앞에서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웬일로 일찍 출근한 소장의 목소리가 사무실 밖까지 쩌렁쩌렁 울린다.

"도대체 요즘 사람들은 조상 무서운 줄 모른다니까. 자기들 편하자고 죽은 사람을 또 그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 집어넣다니…. 우리가 벌초다 뭐다 다 해준다는데 왜 싫다는 거야? 묘지가 국토를 망친다고? 좋아하시네. 진짜 국토를 망치는 것들은 따로 있는데 너무들 하는 거 아냐?”

하루에 몇 건씩 들어오던 매장이 줄면서 매사에 신경질적으로 변한 소장은 매장문화 때문에 여의도 면적의 6배인 땅이 묘지로 사라진다는 아침방송을 보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게 말입니다. 환경단체에서나 텔레비에서 저렇게 떠들어대니 마치 우리를 국토를 갉아먹는 악덕업자 취급하는 거 아닙니까. 벽제화장장은 냉각할 틈도 없이 24시간 풀가동 한답디다. 과자나 신발 만들어내는 공장도 아니고, 원. 24시간 풀가동이라니…. 어, 전씨 왔네요.”

나를 먼저 발견한 상무의 말에 고개를 홱 돌린 소장은 똥씹은 표정으로 쳐다본다. 소장은 지금이 몇신 줄 아느냐며 일하기 싫으면 당장 때려치우라고 소리친다.

"아버지 얼굴 봐서 그동안 참았더니 갈수록 태산이구먼. 전씨, 빨리 안 나가고 뭐해요!"

나는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이 황급히 작업복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산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어깨에 둘러멘 곡괭이가 무겁게 짓누른다. 사장 대신 경영을 맡은 소장은 젊고 힘 있는 사람을 쓰고 싶어 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사장이 일선으로 물러나서도 끝까지 챙겨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벌써 쫓겨나도 열두 번은 더 쫓겨났을 것이다. 어디 가서 그만한 사람 구하기도 힘들다며 스스로 그만두기전까지는 군말 없이 데리고 있으라는 사장의 당부 덕택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소장은 이대로 가다간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공동묘지로 변할 거라며 새로운 경영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외국처럼 공원으로 꾸며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만들자고 했다. 소장의 야심찬 계획은 초기단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선산이 없어 공원묘지의 작은 땅덩어리에 조상을 묻는 것조차 가슴 아파했던 사람들이 환경단체에서 국토를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말에 매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5년마다 한 번씩 내는 관리비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루는 일이 많아졌다. 하룻밤 술값도 안 되는 관리비를 미납한 사람들에게 독촉장을 보내도 반송되거나 미납하는 경우가 많았다. 급기야 이번 설을 앞두고 비석에 관리비 체납 스티커를 붙였다가 성묘를 온 가족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부리나케 떼어낸 적도 있었다.

운구 행렬이 줄을 이어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상여에 실려 자신이 살던 집과 골목을 한 바퀴 돌며 노제를 지내고 산으로 올라오던 것이 지금은 버스에 실려 시속 80킬로로 달려온다. 저승 가는 길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사내아이가 앞장서서 들고 온 영정 속의 남자는 자신이 들어가 눕게 될 광중 속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광중과 관 사이에 흙을 채워 넣고 명정을 반듯하게 펴서 덮는다. 맏상제는 윤씨가 퍼준 흙을 상복 앞자락에 담아 관 위에 세 번 뿌린다. 취토, 취토, 취토. 상주가 한 줌의 흙을 뿌리며 이별의식을 치르는 동안 다른 가족들이나 친지들은 마지막 가는 고인의 모습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잡담을 하고 돌아서서 바람을 피하고 있다.

“거 가만 있어봐라.”

육십 줄에 들어선 남자가 상주 앞을 가로막으며 나선다.

“아제요, 왜요?”

"니 아버지가 언제 박씨로 바꿨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든다. 나는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취토한 흙을 손바닥으로 쓸어낸다. 남자의 말대로 김해 김씨이어야 할 명정에는 밀양 박씨로 바꿔 있다.

“아제가 못 봤으면 아버지가 남의 이불 덮고 저승 갈 뻔 했네요. 사람들이 무슨 일을 이딴 식으로 하고 있어?”

남자는 휴대폰을 꺼내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남자가 핏대를 세우며 전화를 하는 동안 나와 윤씨는 막걸리를 한 잔씩 걸친다. 막걸리 한 병쯤은 냉수 들이키듯 마시는데 빈속이라 금방 취기가 올라온다. 매장을 빨리 끝내고 광중 한 기를 더 파야하는데 아무래도 일이 늦어질 모양이다.

일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삼우제를 지내러 온 가족들이 비석이 바뀐 것도 모르고 제사를 지낸 적도 있었고 내 실수로 광중이 바뀐 채 매장을 해 혼쭐이 난 적도 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앞이 캄캄해진다. 마침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일을 쉽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지, 오늘같이 까다로운 사람들을 만났으면 사달이 나도 벌써 났을 것이다. 명정이 오고도 한참 동안 또 실랑이가 벌어졌다. 평토제를 지내고 나니 2시가 넘었다. 호상이라 그다지 슬픈 모습을 보이지 않던 상주들도 일이 잘못된 것이 마치 우리 탓인양 툴툴거리며 돈 이만 원을 던져주듯 쥐어주고 간다.

"참, 짜다 짜. 왜 우리 탓을 하고 지랄들이야.”

윤씨가 삽을 집어던지고 막걸리를 들이켠다. 나는 말없이 삽을 연춧대 대신 짚고 흙을 다진다.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움직이며 박자를 맞추듯 움직인다. 공원묘지의 모든 장례 절차가 축소되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달구질만은 정성을 다하고 싶다. 에∼헤∼달∼구. 내가 먼저 선창을 한다. 맴돌이를 하듯 빙글빙글 돌아 위아래로 옮겨 다니며 오랜 세월이 흘러도 분묘의 형태가 뭉개지지 않도록 차곡차곡 흙을 다진다. 가끔 봉분이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면 내 잘못인양 속상할 때가 많다. 다시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가족 허락 없이는 함부로 손댈 수가 없다. 나중에 후손들에게 교통사고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묘를 잘못 손봐 그렇게 됐다며 다 내 책임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행님, 이렇게 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퍼뜩 하고 내려갑시다. 얼어 죽겠어요.”

"그만큼 정성을 다하면 나한테 복이 오는 걸세."

"복은 무슨 얼어 죽을 복. 그렇게 복을 많이 받아서 행님은….”

자라목을 한 윤씨가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문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안다. 윤씨의 말처럼 그 복을 다 받았으면 아내나 자식이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것이며 또 내가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살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내와 아들 명까지 사는 것도 복이라고 하면 복일까. 아내가 죽고 나서 딱히 혼자 살려고 한 것도 아닌데 여자들이 서너 달을 못 견디고 떠나간 걸 보면 윤씨의 말처럼 지지리도 복이 없다.

윤씨와 내 목소리가 바람소리처럼 넓은 공원에 퍼진다. 연춧대 대신 삽으로 내리찍는 다짐소리에 맞춰 내 몸은 춤을 추듯 일렁거린다. 절뚝거리던 걸음걸이도 하나의 춤사위가 된다. 내가 읊조리는 말소리를 듣고 고인이 좋은 곳으로 가도록 마음을 다해 선소리를 한다. 달구질을 끝낸 뒤, 광중 하나는 더 팠다. 두 사람이 일을 하니깐 혼자 할 때보다 훨씬 빨리 끝난다.

윤씨는 일이 끝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산을 내려간다. 나는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듯 허전하다. 나는 꽁초를 입에 문다. 공원묘지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가끔 종잡을 수 없을 땐 담배를 피워 문다. 영도와 양씨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어제 불을 내고 혼나 많이 놀랐을 것이다. 오늘 하루 종일 영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양씨의 리어카도 보이지 않은 걸 보니 또 몸이 안 좋아 드러누운 모양이다.

8구역은 둘레석도 없이 봉분과 비석만 덩그렇게 있다. 한 평 반짜리 작은 묘들이 어깨를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정겹다. 화려한 장식도 없이 수수한 모습의 묘지를 볼 때면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이웃처럼 다정하게 느껴진다. 8?1?23. 8구역 23번지는 죽은 사람의 혼 번지다. 어려서 죽은 아이의 유택은 아들과 같은 해에 태어나 몇 해를 더 살다 갔다. 그 아이에게는 한 평 반 크기의 번듯한 집이라도 있지만 내 아들에겐 떳떳한 문패조차 없다. 만날 남의 집은 지어주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못난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 8구역을 지나 햇볕이 잘 들지 않고 구석진 곳으로 간다. 표석도 없이 봉분이 땅에 달라붙어 있는 무연고 묘지다.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 없이 쓸쓸히 죽어간 사람들. 그 죽음을 위로하듯 울창한 동백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동백나무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묏등에 떨어진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아내와 아들을 합장한 묏등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봉분은 이발소에서 바리캉으로 바짝 민 아들의 머리처럼 까칠까칠하다. 열흘 만이다. 명절 때는 바빠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

비가 쏟아지는 칠흑 같은 밤,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들을 리어카에 싣고 공원묘지에 왔는지, 내 정신이 아니었다. 오로지 아내와 아들을 내 손으로 묻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헌 이불에 아내와 아들을 둘둘 말아 탈관하듯 한 곳에 묻었다. 질척이는 흙을 밟을 때마다 발이 진흙탕 속에 푹푹 빠졌다. 내 발길질에 아내와 아들이 밟힐까봐 흙을 제대로 다지지도 못하고 산을 내려왔다.

세월이 흘러 아무 표석이 없으면 묘를 찾지 못 할 것 같아 그 옆에 묘목을 심었다. 어린 묘목이 풍채가 우람한 나무로 자랐다. 동백나무의 붉은 꽃이 알전구처럼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내가 없더라도 동백나무가 아내와 아들을 지켜줄 것이다.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눈은 금방 함박눈으로 변해 봉분 위에 쌓인다. 나는 표석처럼 그 자리에 서서 공원묘지를 하얗게 덮는 눈을 지켜본다. 봉분과 묘지를 울긋불긋 장식한 조화와 내 어깨 위에도 위로하듯 조용히 눈이 쌓인다. 까마귀 떼들의 움직임이 부산스럽다. 날이 희끄무레해지자 까마귀 떼들이 숲으로 푸드덕 날아간다. 나는 낮에 장례를 치르고 남은 막걸리를 마저 마시고 얼어서 버석거리는 수육 한 점을 씹으며 걸어간다. 자꾸 발이 접질린다. 아이쿠,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만다.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차가운 눈이 코끝에 와 닿는다. 눈으로 덮인 땅 속에서 따뜻한 흙 기운이 느껴진다. 낮에 파놓은 광중이다. 나는 똑바로 누워 반쯤 접힌 왼다리를 쭉 편다. 안성맞춤이다. 편안하고 아늑하다. 조금 전까지 아파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던 다리의 통증이 씻은 듯 사라진다. 스르르, 눈이 감기며 자꾸 잠이 쏟아진다. 눈이 명정처럼 내 몸을 덮는다.


 

[경남신문 신춘문예]소설 심사평


공간 구성력·간결한 문장 조화로워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총 여섯 편이었다. 단편소설은 이야기를 나열할 것이 아니라 작가가 포착한 문제적 상황과, 그 속에서 인간으로서 반응하고 행위하며 삶의 새로운 질서와 영감을 찾아내는 인물 창조에 집중되어야 한다. <번지 점프 designtimesp=20722>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designtimesp=20723> <달빛, 완월정에… designtimesp=20724>의 작품들은 방법적으로 좀 더 숙고할 필요가 있는 작품들이었다. <먼지 폭풍 designtimesp=20725>은 여리고 비감한 문체와 철거 작업으로 폭파될 고층아파트에 누운 병든 남편과의 대립이 긴장감을 더해갔으나 결말 부분이 허약했다. 차라리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 꼼짝않고 서서 남편을 제물로 한 먼지 폭풍에 휘말리는 편이 소설로서는 살아나지 않았을까?

마지막에 ‘서서 자는 잠’과 ‘행인1’을 두고 고민이 길어졌다.

‘행인1’은 코쿤 샐러리맨에 디지털과 글루미라는 최근 경향이 결합된 사회현상적 인물을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의 미덕은 나홀로족의 삶을 반성 없이 정돈해 역설적인 해방감을 준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무리 없이 잘 짜여진 우수작이다. 그러나 텍스트들을 이용한 인스턴트적인 작법의 가벼움과 소재의 유행성이 작품의 개성을 약화시킨 점이 아쉬웠다. ‘서서 자는 잠’은 몸으로 소설을 내려치는 첫 문단부터 심상치 않더니 읽는 기쁨이 각별했다. 배경이 공원묘지여서 자칫 삶과 유리될 수도 있으나 오히려 모두의 공동운명인 죽음을 축으로 떠도는 삶들을 결속시키고 노동하는 늙은 몸의 역동성을 통해 수난과 같은 전씨의 밑바닥 일생에 고결함을 부여한다. 묘지라는 외지고 적막한 공간을 장악한 구성력과 전씨라는 인물을 드러내는 힘과 육화된 언어로 간결하게 구사한 문장이 조화로웠다.

새로움이 없어 자칫 오래된 소설 같다는 점이 마음에 짐이 되었으나, 시류와 먼 삶의 현장에서 독자적인 이야기를 생산해낸 진중한 창작 자세에 신뢰가 갔다. 서서 자는 잠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행인1’의 응모자에게 격려를 보내며 당선자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이제하·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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