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은 고향 통영으로 돌아가 영면하기 전에 문학소녀의 꿈을 키웠던 모교인 진주여고에 들렀다. 당시 울먹이며 박경리 선생을 떠나보냈던 후배들이 모교에 선배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교정에 조그마한 시비 하나를 세웠다. 그리고 지역문인과 후배들이 모인 가운데 27일 오전 10시 조촐한 제막식을 가졌다. 시비에는 박경리 선생이 평소 아꼈던 ‘우리들의 시간’이란 시가 새겨져 있다.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딪혀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본들 徒勞無益 時間이 너무 아깝구나.
박경리 선생이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며 성찰하는 마음을 드러낸 시다. 여고 후배들에게 늘 성찰하며 살라는 가르침을 길이 전해줄 것 같다. 자신을 돌아볼 시간 조차 없는 요즘 학생들에게 금과옥조같은 시인 것 같다. 시비 곁에서 박경리 선생의 후배들을 만났다. 추모제때 박경리 선배를 만난 이들은 오늘 시비가 낮설지 않았다. 3학년 이슬기 학생은 “추모제 때 따님인 김영주, 사위 김지하 시인을 보면서 박경리 선생이 대단한 분인 것을 알았다. 박경리 선생이 김동리 선생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오게 되었다고 들었다. 김동리 선생의 부인도 우리 진주여고 출신으로 알고 있다. 오늘 시비 제막을 계기로 박경리 선배가 대단한 문학가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했다. 2학년 진순종 학생은 “박경리 선생과 같은 대문호를 배출한 우리 진주여고가 너무 자랑스럽다”며 “앞으로 시비를 보며 학교의 명예를 드높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교지 편집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2학년 양승희 학생은 “생전에 편집부에서 만나려고 했는데,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박경리 선배는 시비로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신것 같아 자랑스럽다”고 했다. 조헌국 교장은 “이번 시비는 동문회에서 제작해 세운 것입니다. 제17회 1945년 졸업 동문으로 제1회 자랑스런 일신인 상을 수상한 박경리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전해줄 수 있어 무척 기쁩니다”며“시비가 비록 여고 교정에 있지만, 시민들도 자주 들러 박경리 선생의 문학정신을 가슴에 새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는 소감을 밝혔다. 박경리 소설가의 문학적 숨결은 지금 진주 하동 통영 원주에 남아있다. 박경리의 문학적 업적을 순례하는 문인들이 박경리가 문학 소녀의 꿈을 키웠던 진주여고에 들렀을 때, 이 시비는 박경리 선생의 숨결로서 문인들을 맞아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비 제막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진설명:27일 ‘우리들의 시간’시비 제막을 한 후 진주여고 조헌국 교장과 학생들이 박경리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