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처음 대하는 사람도 5분이면 친숙한 그의 언변 속에 빠져들고 만다. 참으로 말 맛을 내는 사람이라 할 만큼 유머와 재치를 가진 사람, 신변 이야기 속에서도 동서양의 박학다식이 자연스레 넘쳐나는 사람, 교육관료답지 않게 무한한 감성을 가진 사람, 항상 신선한 웃음과 에너지를 주는 사람, 아무리 보아도 영리하게 생긴 사람. 석필 이우걸(61) 밀양교육청 교육장에게 붙는 온갖 수식어다.
창녕 부곡이 고향으로 세종고, 경북대를 졸업하고 늦깎이로 교직에 입문하여 밀양공고, 진해고, 대청고교장을 거치고 화려하지 않은 교직경력에도 지난 9월 밀양교육의 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도 8시 40분이면 어김없이 청사를 들어서는 그의 모습은 극장을 찾는 아이만큼이나 맑은 동안이다. 현관을 들어서며 상대가 누구이건 항상 먼저 던지는 그의 인사말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순백의 언어다. 상하를 가리지 않는 이런 친화가 오늘을 있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보다 나은 정책 위해 여전히 책과 씨름하는 수장
쉬지 않는 교육과 문학에 대한 열정, 한 마디로 그는 작은 거인이다. 이름을 연상하면 큰 체구를 가진 호걸인 것 같지만 실상은 크지 않는 체구를 가졌다. 그러나 누구나 그를 작은 거인으로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작은 체구에도 저런 열정이 어디서 나올까 할 정도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연구하고 대화하고 메모한다. 집무실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광경은 항상 손에 책을 놓지 않고 서 있는 그의 독특한 습관이다. 평소 그의 뛰어난 언변은 타고나기보다 오히려 이런 준비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교육 현안과 아이디어를 찾으려는 그의 노력은 대단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누구와도 만난다. 청사 내 장학사는 물론 심지어 운전기사까지 귀찮아 할 정도란다. 교육 관계자, 지역원로, 문인, 경로당 노인, 장애우, 통학버스 기사, 급식 도우미 등 다양하다. 책상 위에 놓인 그의 수첩과 메모지는 항상 교육 현안과 아이디어로 빼곡하다. 어쩌면 교육현안 파악에 대한 탄복할 만한 그의 통찰은 이런 대화의 산물이 아닌가 한다.
이우걸, 그는 밀양교육의 수장으로서가 아니라 문학계 인사로서 더욱 우뚝한 인물이다. 70년대 초에 이미 중앙문단에 데뷔하여 40여 년간 시조를 창작하고 시조평론집을 발간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적 시조를 발전시킨 중진 문인이다. 경남시조 문학회장, 마산문인협회장, 경남문인협회장,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회장 등 그의 화려한 이력이 잘 말해준다.
문학상 휩쓴 문인…"시조를 사랑하는 시인이죠"
90년 송파시조문학상, 91년 정운시조문학상, 94년 경남문화상, 95년 중앙시조대상, 2000년 이 호우시조문학상, 2003년 한국문학상, 올해에는 가람 이병기 시조문학상을 받은 명실 공히 우리나라 대표적 정형시인이다. '내게는 시조는 운명이었고 지금도 운명이다'는 자신의 말처럼 그에게는 교육 이상으로 시조가 생명이고 뿌리이다.
우리 주위에 많은 문인 중에는 재승박덕하거나 언행일치가 안 되는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이면 같은 문인들조차 실망을 느끼고 회의를 느낀다.
그러나 이 교육장을 대하는 동료 문인이나, 원로, 후학들은 그의 인간적인 면을 높이 평가한다. 어느 후학의 말을 빌리면 이 교육장의 시와 인간을 '본이 되는 시, 본이 되는 시인'으로 그를 존경한다.
이우걸 교육장, 이제 정년을 6개월 정도를 남겨두고 있다. "아직도 할 일이 많다. 부박한 삶에 기생하는 내 헐벗은 언어들이 균형 있는 시력을 회복할 때까지 나는 늘 문학청년으로 방황할 것"이라는 자신의 말처럼 문학에 대한 정열과 함께 교육에 대한 마지막 정열도 소리를 내며 타는 초만큼이나 더욱 치열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