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상
작성자 경남문학관 /
작성일 2008-07-20 01:37 /
조회 1,748회
- 성명(호)이은상(노산(鷺山))
- 본명
- 출생년도1903-10-22
- 출생지마산시
- 거주지작고(서울)
- 장르시조/수필
- 소속
- 활동사항작고
본문
'. 1903. 10. 22∼1982. 9. 18
. 시조시인, 사학가, 수필가. 문학박사. 호 노산(鷺山).
. 경남 마산 출생. 본관은 전주. 부친 남하(南荷) 이승규(李承奎)의 차남. 부친이 설립한 마산 창신학교 고등학과 졸업(1918). 연희전문 3년을 수료했다(23). 모교인 창신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1923∼25) 일본으로 건너가 조도전대학 사학부에서 2년간 수학(1926∼27)하고 일본 동양문고에서 국문학 연구를 하면서 시심을 키웠다(1927∼28)
. 귀국 후 월간지{신생}(1929∼31), {신가정}(1932∼35)등 잡지 편집에 관여하는 한편 이화여전 교수(1931∼32), 동아일보 기자(1932∼35), 조선일보 편집고문·동 출판국 주간(1935∼38)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하다가
. 일제 탄압이 극심한 암흑기가 되자(38) 붓을 꺾고 부산 등지로 실의의 유랑길에 올라, 전남 백운산아래 은거(1938. 6∼42. 9)했다.
.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경에 잡혀 함남 흥원경찰서와 함흥감옥에 구금되었다가 기소유예로 석방(43. 9)
. 이후 전남 광양 백운산에 들어가 친구가 경영하는 광산에 머무르다가, 45년 1월 사상범 예비검속에 걸려 또 한차례 광양유치장에서 옥고를 치르는 중 8·15광복과 더불어 출옥했다.
. 광복 후 호남신문사를 창간. 사장 및 국학도서출판사장(1945. 12∼48. 10), 전남 광주 호남신문사 복간 사장(1952. 6∼54. 5), 대구 청구대 교수(1954. 10∼69. 3), 영남대 교수(73), 이충무공 기념 사업회장(1955. 10∼61. 3), 민족문화협회회장(1962. 2∼82. 9), 한국시조시인협회회장(1966. 1∼76. 2), 한국 산악협회 회장(1967. 7∼82. 9),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위원장(1969. 2), 국정자문위원(1981. 4∼82. 9), 통일촉진회 최고위원(1981. 1∼82. 7), 재단법인 한글학회이사(1966. 4∼82. 9), 한글학회회관건립 위원회장(1976∼77), 한국시조시인협회종신명예회장(1977. 1부터), 예술원 종신회원(1978. 10부터) 외 21가지의 뭇 직위를 지켰고,
. 예술원상(64)과 노산문학회 조직 및 한글공로상으로 대통령상 수상(69),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70), 5·16민족상(73), 대한민국 건국포장(77)을 받았으며, 1982년 9월 금관문화훈장(1등급)이 추서되었다.
. 1976년부터 노산문학상을 재정, 그해부터 시상하여 오고 있다.
. 19세 때인 1922년 시조 <아버님을 여의고> <꿈 깬 뒤> 등을 썼으나 <고개를 수그리니>(28)를 스스로 처녀작으로 내세우고 있다.
. 시조 <봄처녀; 25>, <옛 동산에 올라; 28>, <성불사; 31>, <가고파; 32> 등을 발표하고 시조집 {노산시조집; 32}을 펴냄. 그 외에도 <오륙도; 34>, <천지송; 35>, <고지가 바로 저긴데; 54>등을 발표
. {노산시조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노산문선; 영창서관, 42, 54}, {노산 시조 선집; 남향문화사, 58}, {푸른 하늘의 뜻은; 금강출판사, 70}, {기원; 경희대 출판국, 82. 4}, {노산의 문학과 인간; 햇불사, 82. 11} 등과 함께 노산은 시·시조 2천여 편을 남겼으며, 동시에 손꼽히는 문장가이자 웅변가이기도 하다.
. 수필집 {노방초; 창문사, 35}, {무상; 정상창학회, 36}, {대도론; 국학도서출판사, 47}, {민족의 맥박; 민족문화사, 51}, {노변필담; 민족문화사, 53}, 기행 {피어린 육백리; 햇불사, 62} 등과 전국 각지의 의사·열사들의 비문 수백 편과 기행문
·사화·전기 등 46권의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 주요 논문으로는 {향가의 가요사적 지위; 현대공론, 27. 9}, {조선문학 어휘고; 신생, 29. 3} 등
. 저서로는 전기 외에 {묘향 산유기; 동아일보사, 31. 7}, {탐라기행 한라산; 조선일보사, 37. 11}, {기행지리산; 조선일보사, 38. 10}, {이 충무공 일대기; 호남신문사, 46. 3}, {조선 사화집 고려시대 편; 한성도서, 49. 10}, {사임당의 생애와 예술; 성문각, 62. 9}, {사임당과 율곡; 66}, {산 찾아 물 따라; 박영사, 66. 10}, {난중일기; 68}, {불타는 성지순례; 75} 등이 있다.
. 43편의 시조를 담은 시조집 {기원; 경희대 출판국, 82. 3. 20}을 펴내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여든(80)살을 일기로 4315(1982)년 9월 18일 상오 0시 19분 타계하였다.
(참고; {한국시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7.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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