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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윤이상을 땅에 묻는가?
작성자 경남문학관
댓글 0건 조회 2,186회 작성일 2011-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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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in] 누가 윤이상을 땅에 묻는가?

 

신숙자 씨 구출운동과 윤이상 기념사업에 대하여

시인 이달균 글꾼(moon1509@korea.kr)

문제의 본질은 신숙자씨 모녀 구출운동이다

ⓒ 시인 이달균
먼저 통영에서 시작된 신숙자 씨 모녀 구출운동이 전 국민적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일은 오길남 씨 한 가족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아픔이기에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월북한 이들 모녀 외에 강제 억류된 많은 사람들도 함께 구출되어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이 일과 관련하여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에 대한 진실의 왜곡이 매우 우려스러운 지경에 이른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신숙자 씨 모녀 구출운동이 통영시에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펼쳐온 통영국제음악제를 비롯한 윤이상 기념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면 이는 분명 본질을 벗어난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소모적인 진실게임은 국민정서를 분열시킨다.

이 일의 발단은 신숙자 씨의 남편인 오길남 씨가 윤이상 선생의 권유로 월북했다고 말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오길남 씨가 말하는 내용과 윤이상 선생이 밝히는 내용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더구나 오길남 씨는 생존해 있지만, 윤이상 선생은 이미 고인이 되었으므로 자신의 견해를 밝힐 기회마저 사라졌다는 것이다. 가슴 아픈 것은 이 소모적인 진실게임에 국력이 낭비되고 국민 정서가 분열되고 예향 통영의 이미지마저 추락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85년 12월 오길남 씨는 북한으로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월북했다가, 1986년 11월 오길남 씨 혼자서 탈북한다. 그리고 1993년 『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오』(자유문학사)란 책을 펴내었고, 다시 2011년 6월 6일 『잃어버린 딸들, 오!혜원 규원』(도서출판 세이지)을 펴내게 된다.

그는 책을 통해 윤이상 선생이 월북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언론을 통해 이 일이 알려지게 되자 윤이상 선생은 한겨레신문에 ‘오길남 사건과 나’란 글을 보냈고, 1992년 6월 19일 “작곡가 윤이상 씨 ‘오길남 사건관련설’ 반박투고”란 제목으로 실리게 된다.

이 글을 보면 1977년 한민련 국제회의장에서 오길남을 먼발치에서 본 것이 처음이고, 1986년 11월 전화를 통해 “선생님, 저 오길남인데요 이북에서 도망해 왔습니다. 탈북 후 6개월 간 미국과 독일의 정보기관에 갇혀 조사를 받고 나왔는데,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란 말을 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후 오길남 씨의 간청에 의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1990년 민족통일음악제에 참석하여 관계자들을 설득하여 신숙자 씨의 편지와 음성 카세트테이프를 받아왔다고 한다. 오길남 씨는 사진을 받고는 히히득 거리면서 “ 아이들이 못났는가”하다가 “이제 가족 찾는 것을 단념하였습니다.”하길래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며 쫓아내다시피 했고 이것이 그와의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윤이상 선생은 말미에서 “이 글은 속임 없는 진실의 전부이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길남 씨의 월북은 희망을 향한 선택이었다.

오길남 씨는 1942년 경북의성에서 태어나 부산고교와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1970년 독일로 유학 가 1985년 브레멘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런 엘리트인 그가 윤이상 선생의 권유에 의해 가족과 함께 북한행을 결심했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

그의 저서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에는 월북의 동기가 수도 없이 나온다. 예를 들면“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사회주의를 동경하였다.”고 밝히고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이야말로 유토피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또한 “나의 이런 북에 대한 견해와 시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기독교 경건주의자인 게르하르트 브라이덴슈타인이었다. 그의 저서들과 북한을 방문하고 쓴 몇 편의 학술논문들에 깊숙이 빠져든 탓이었다.”고 스스로 적고 있다.

북한 공작원과의 만남을 주선했던 친구 김종한의 말을 상기하면서 “파토스(격정)로 가득 차 있는 나에게,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궁핍한 상황에 처해있는 나에게 있어 그 말은 하나의 서광이자 한 줄기 희망과 같았다.”고 기술하는 한편, “오로지 현실을 도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결국 나는 북행을 결정함으로써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했다.”고 하였다. 이런 말들을 종합해 보면 그는 마르크스 경제학자로서 이상의 실현, 생활고에 따른 현실도피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월북이었음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설령 윤이상 선생에게 몇 마디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나이 불혹을 넘긴 한 가정의 가장이며 경제학 박사로서 모든 판단은 스스로가 한 것인데 이제 와서 윤이상 운운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더구나 윤이상 선생은 그의 월북을 몰랐다고 하지 않는가. 그는 스스로 월북하였다가 탈북하였지만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현재 신숙자 씨 모녀가 수용소에 갇혀있는 것도 그의 탈북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윤이상 선생은 1967년 동베를린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는다. 차가운 감방생활을 하던 1969년, 카라얀, 클렘페러, 슈톡하우젠, 스트라빈스키 등 세계적 음악가들의 탄원으로 석방되어 독일로 갔다. 이국에서 간난신고해가며 음악세계의 지평을 넓혔지만 조국은 그에게 씻지 못할 형별을 주고 말았다. 결국 이 사건에 대해 2006년‘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동백림 사건은 과장된 것이므로 정부는 관련자에게 포괄적으로 사과해야 해야 함”이라고 권고하였다.

ⓒ 경남 통영이 낳은 천재 음악가 윤이상

윤이상기념사업은 대한민국과 유네스코가 인정한 사업이다

통영시의 역점사업인 통영국제음악제는 현대음악의 거장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시작되었다. 2000년과 2001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2002년부터 본격 개최되어 현재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 수준의 음악제로 위상을 정립해가고 있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은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2006년 한국 콩쿠르 중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산하기관인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에 가입해 그 권위를 인정받았고, 2011년 5월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2010 공연ㆍ전통예술행사 평가사업’에서 전체 평점 91.8점으로 최우수 A등급을 받아 음악부문 1위를 차지했다. 또한 ‘2011 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에서도 음악부문 사업 중 최고 지원액을 기록했다.

2010년 9월 19일에는 선생의 생가 자리에 120억 원을 들여 윤이상기념공원인 도천테마파크를 준공하였고, 숙원사업인 통영국제음악당은 총사업비 480억 원으로 2012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은 국비 50%와 도비 35%, 시비 15%가 지원되는 국가적 사업으로서 명실공이 윤이상의 고향 통영과 아시아현대음악의 본고장을 위한 밑그림들이다. 분명한 것은 통영시의 윤이상 기념사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음악도시 통영, 윤이상의 이름으로

인구 14만의 작은 도시에 윤이상 기념사업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위의 이유들만은 아니다. 통영의 대부분 학교의 교가를 윤이상 선생이 작곡하였기에 시민들과 선생과는 이미 어릴 적부터 정서적 공감대를 함께하고 있다. 이처럼 통영은 윤이상의 고향이라는 음악사적 배경과 한려해상국립공원 중심부에 펼쳐진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음악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다.

통영시민들은 월북한 통영의 딸 신숙자씨 모녀뿐만 아니라 납북되어 억울한 삶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랑스러운 통영의 아들 윤이상 선생의 명예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 신숙자 모녀를 위한다면 위대한 예술가 윤이상 선생을 흠집 내기보다 다각도에서 구원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냉정을 찾아야 하고 그 본연의 일에 매진해야 한다. 한국예술1번지 도시, 통영시민은 이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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